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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제암리 두렁바위 '학살'
등록일 :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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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영 앵커>
삼일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암리 두렁바위 사건입니다.
3.1 만세 운동 당시 가장 잔인했던 화성시 제암리 학살 현장에는 지금도 아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유한권 국민기자가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유한권 국민기자>
3·1 만세의 함성이 전국으로 번져나가던 1919년 4월.
(두렁바위길 /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에서도 주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을 외칩니다.
만세를 부르던 제암리 주민들이 일본군에 학살당한 두렁바위길의 아픔은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져 내려옵니다.

인터뷰> 김정혜 / 경기도 화성시
“(당시) 교회에서 많은 분이 희생되어서 이 동네가 사적지가 되었습니다. (3·1절에) 전국에서 많은 순례객이 다녀가고 있습니다.”

일제가 저지른 학살 만행의 흔적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동네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주민들을 제암교회에 가둔 채 불을 지르고 뛰어나가는 사람은 총을 쏴 사살하는 일본군의 학살 모습에 관람객들은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불꽃이 되는 순간까지 외쳤던 독립 정신과 함성은 이제 글귀로 그 울림을 전합니다.

인터뷰> 석일원 / 서울시 동작구
“3·1절이 되면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고 일본 사람들이 와서 예배당에 불을 지른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애국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고 국가를 더 뜨겁게 사랑하고…”

1959년 4월 학살의 현장에 세워졌던 순국기념탑은 1982년 정부가 제암리 학살의 현장을 정밀 조사하면서 기념관 앞으로 옮겨졌는데요.
제암리와 고주리 학살사건으로 순국하신 선열 29분의 이름이 독립 정신과 희생정신을 전합니다.

인터뷰>전우학 / 경기도 화성시
“3·1절이 되면 동네 주민으로서 돌아가신 조상님들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선열들의 묘소입니다.
운동순국기념관 옆에 조성된 묘소 주변에는 일제 폭거에 항거하는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는 듯 느껴집니다.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없었다면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영상촬영: 이상초 국민기자)

제암리 두렁바위길에 울려 퍼졌던 그날의 만세 함성과 아픈 역사의 현장이 우리에게 독립 정신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유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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