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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손병희 기념관 20년 만에 새 단장
등록일 :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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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경 앵커>
의암 손병희 선생 하면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죠.
하지만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는 기념관이 너무 낡아 아쉬움이 컸는데요.
광복절을 앞두고 20년 만에 새롭게 단장됐습니다.
최신영 국민기자가 돌아봤습니다.

최신영 국민기자>
(의암기념관 / 충북 청주시)
기와지붕을 얹어 한옥을 닮은 기념관.
새로 바꾼 바닥재와 은은한 조명 빛에 둘러싸인 전시물이 관람객을 맞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 시위 현장을 묘사한 그림.
당시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비폭력 만세 운동을 주장했는데요.
만세 시위 참가자들이 총칼을 앞세운 일제에 맨몸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전시관 한가운데 놓여있는 커다란 솥단지 3개.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 대표로 3·1 운동을 이끌었는데요.
천도교 행사 때 급식용으로 쓰였던 이 솥들은 일제에게 천도교 세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한 빛바랜 흑백사진.
손병희 선생의 53번째 생일 기념사진으로 셋째 사위인 소파 방정환 선생의 모습도 보입니다.
은빛으로 치장된 생활 집기에 쌍두마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의 흑백 사진도 보이는데요.
일제가 얕보지 못하게 선생의 힘을 보여주려던 위장술로 전해집니다.

인터뷰> 한수현 / 충북 청주시
"저라면 당시에 과연 이분들처럼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저에게 한번 더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했던 손병희 선생의 유물과 유품이 전시돼 있는 기념관, 뜻있는 지역 대기업의 후원으로 20년 된 낡은 모습 대신 말끔하게 단장됐습니다.

전화인터뷰> 손 윤 /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여러 가지 문제로 초라했었는데 이번에 시설 지원을 해주셔서 많은 국민이나 탐방객이 즐겁게 바른 역사를 알게 해줄 수 있는 깨끗한 차림으로 단장했습니다."

관람객들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가 마땅하다며 달라진 기념관을 반깁니다.

인터뷰> 이동석 / 충북 청주시
"벽 같은 화면이 우중충하고 누렇게 있었거든요. 유물 자체를 돋보이게 만드는 조명을 새로 간 게 눈에 많이 띄었어요. 독립운동 33인 대표이시잖아요. (손병희) 선생님이..."

청주에서 태어난 손병희 선생.
동학 3대 교주 당시 친일분자 60여 명을 쫓아내고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꿨는데요.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 등을 인수해 민족 교육사업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
3·1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자진 체포됐고 복역 중 출소한 뒤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손병희 선생 유허지)
들판 저 멀리 보이는 초가집 한 채.
기념관 주변에는 손병희 선생이 태어난 생가가 남아있고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도 세워져 있습니다.

인터뷰> 심상철 / 청주시 문화관광해설사
"1994년에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해서 선생님의 동상과 사당을 건립함으로써 명실공히 유허지가 된 것입니다. 전국의 많은 학생과 국민들에게 애국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의 동상 옆에는 태극기 하나가 힘차게 휘날리고 있는데요.
다른 32개의 태극기와 함께 민족 대표 33인을 상징합니다.

인터뷰> 유진복 / 세종시 조치원읍
"그분의 독립정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고취할 수 있고 둘러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독립 영웅의 높은 뜻을 기리며 숙연해지는 모습입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새롭게 단장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손병희 기념관.
이곳을 찾아 애국선열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국민리포트 최신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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