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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의 비극과 해원 - 제주 예비검속 사건 2부
등록일 : 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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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사건의 배경 및 특성 소개
- 1950년 6월 25일 제주도경찰국이 내무부 치안국의 통첩을 받아 관할 경찰서에 요시찰인 및 불순분자를 일제히 구금할 것을 지시, 모슬포경찰서는 관할 지서인 한림, 고산, 안덕, 두모, 저지, 대정, 무릉 등의 지서에 각각 지시를 내려 주민들을 연행하여 구금함.
- 모슬포 경찰서 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344명을 예비검속하여 이 가운데 252명을 1950년 7월 16일, 그리고 8월 20일경 두 차례에 걸쳐 해병대 당국에 송치. 해병대는 섯알오름 일제 탄약고 터에서 7월 16일~20일 사이 1차, 8월 20일 2차에 걸쳐 집단 총살함.
- 1956년 유족들에 의해 시신이 수습되었고 백조일손 묘역, 만벵디(한림) 묘역을 조성.
2006년~2019년 정뜨르비행장에서 발굴된 총 405구의 유해 중 모슬포지역 희생자 7구가 확인 되어 섯알오름 이외 다른 장소로도 끌려가 총살되었음을 알게 됨.

예비검속 희생 유족 백조일손유족회 양신하(84)
- 큰형님 양기하(42) 희생. 유족 양신하씨는 1949년부터 매일 일기 작성 (약 70권) 예비검속 유족인 故이도영박사와 함께 평생동안 진실 추적, 많은 자료 보유.
# 사촌형님이던 양은하가 4.3때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치사로 희생되었고 이에 분노한 형제들이 시신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하고 고문치사를 밝혀낸 일이 있음.
# 이후 전쟁이 발발하자 경찰들에 의해 큰형님 양기하가 보복성으로 예비검속 됨.
# 무릉지서에 연행,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되었다가 음력 7월7일 섯알오름에서 총살됨.
# 유족 양신하씨는 72년 간 매일 일기에 관련 사건들을 기록해 왔으며 재미교포였던 이도영박사와 가해자 인터뷰 등 진실을 추적해 왔고 이도영 박사 사망 후 그 자료를 위임받아 보관 중임. 제주예비검속 역사관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 소원.

예비검속 희생 유족 백조일손 양봉옥(85) 양천익(73) 남매
- 부친 양윤하(34) 희생. 당시 14세였던 양봉옥씨는 사건 관련 기억 또렷.
# 부친이 구금된 절간고구마창고에 양봉옥씨가 밥을 해 간 날이 총살 당일이었음.
# 부친은 위 양기하와 사촌 간으로 양은하 고문치사 사건 이후 보복성으로 희생됨.
# 양봉옥은 사건 2년 후 시신 수습을 시도, 군인들의 저지로 실패.
# 1956년 시신수습 후 묘역조성 후에도 군사정권의 감시로 참배조차 쉽지 않았다 함.
백조일손 묘역은 5,16쿠데타 후 비석이 훼손되기도 했음.
# 묘역에 132위 안치하고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후손들은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의 백조일손이라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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