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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 동원 부정 속 희생자 위패 봉안
등록일 :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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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석 앵커>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동원 된 뒤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8백여 명의 위패를 봉안한 추모 공간이 부산에 마련됐습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학생들을 위한 산교육장이 될 '기억의 터'에 임수빈 국민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임수빅 국민기자>
일제 강제 동원으로 끌려가기 전 조선인 젊은이가 가족과 생이별하기 전에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탄광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했던 갱도 입구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원치 않는 일제 군복을 입은 채 전쟁터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모습도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기억의 터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동원의 현장을 보여주는 빛바랜 4백여 점의 흑백사진들, 부산에 있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새로 마련된 '기억의 터'에 선보였는데요.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숙연한 모습입니다.

인터뷰> 고승열 / 부산시 남구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고생스럽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런 일을 했다는 게...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도 조국의 품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강제 동원 희생자, 기억의 터는 그들의 넋을 기리고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공간으로 마련됐습니다.

전화인터뷰> 황동준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국장
"역사관에 한 분 한 분 모셔진 위패는 일본이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만큼 후손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전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이곳에는 모두 815명의 위패가 봉헌됐는데요.
위패에 적힌 희생자 이름, 출생일과 숨진 연도와 함께 배우자 이름이 함께 쓰여 있습니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울 정도인데요.
사망 일자를 알 수 없어 '불상'이라는 글자가 적힌 위패도 곳곳에 보입니다.
이들이 숨진 곳은 일본이 260여 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남양군도와 사할린, 뉴기니, 필리핀, 중국 등 다양합니다.
하지만 사망 시기가 확인된 희생자는 490여 명으로 전체의 60% 정도뿐, 안타까움 속에 위패 봉헌으로나마 조국의 땅에서 추모가 이뤄지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유진 / 부산시 수영구
"너무 마음이 안 좋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황아연 / 경남 양산시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죄송스럽습니다."

일본의 학살 만행과 함께 강제 동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인터뷰 영상, 그리고 강제 동원 노동자 모습을 3차원 영상으로 보여주는 홀로그램도 볼 수 있는데요.
관람객들은 왠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현장음>
"강제로 노동하다 끌려와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거야."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무려 780여만 명, 그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나 됐는데요.
기억의 터 한쪽에는 강제 동원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습니다.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며 집으로 보낸 편지도 있고, 신세 한탄을 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도 있습니다.
일제가 강제 동원된 사람에게 준 급여명세서에는 빨간 숫자가 보이는데요.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어간 돈이 급여보다 더 많아 이런 표시를 한 것으로 일제가 악랄하게 착취를 했다는 산 증거입니다.

인터뷰> 장영훈 / 부산시 남구
"우리가 이런 것들을 후손에게 잘 물려줘서 아픈 기억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봉안할 수 있는 위패는 최대 4천여 개, 빈자리로 남아있는 곳에는 희생자를 더 찾는 대로 추가로 봉안될 예정입니다.

일제에게 강제로 끌려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이곳 기억의 터.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을 고발하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국민리포트 임수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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