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의 화제의 현장을 찾아가 소개하는 ‘문화의 창’입니다.
기생하면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도우미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신데요,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기생은 전통예술을 전승하고 패션을 선도하는 예술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어서오세요.
최고다 / 문화팀
Q1> 기생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하나요? 요즘으로 따지면 종합예술인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죠?
A1> 네, 사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기생은 원래 가무를 하는 유녀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미 고대부터 존재했고 고려나 조선시대엔 나라에 소속 돼 궁중연회나 국가적인 행사에서 공연을 하는 예술인 같은 존재였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선 이들의 감춰져왔던 세계와 삶을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화면 보시죠.
경복궁안의 국립민속박물관 한 켠에 마련된 ‘엽서속의 기생읽기’ 전시회.
지금은 사라진 기생의 자취가 엽서 속에서 나마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번 엽서전은 1910년 이전에 국가에 소속된 관기가 아닌 기생학교라고 불리는 권번 소속의신식 기생에 초점이 맞춰졌는데요, 엽서에서 보듯이 기생학교에선 음악과 서예 그리고 무용까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한마디로 사립 종합예술 단과대학 이라고 할 수 있죠.
입학금 만해도 그때 당시 쌀 한가마 정도의 2원에 학기마다 수업료가 따로 붙었다니, 1910년부터 40년대의 넉넉지 못한 시대상황을 투영해보면 있는 집 자식만이 다닐 수 있는 고급 학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초생달 모양의 눈매, 청초한 입꼬리 계란형 얼굴에 복스럽게 붙은 볼 살까지.
거기에 인공의 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
현대적인 기준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기생들의 모습에 관람객들은 엽서속의 기생의 모습에 빨려 들어갑니다.
기생들은 이렇게 권번에서 배운 예술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예술의 한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사회계층이었는데요, 기성권번 지금으로 말하면 평양기생학교의 우등생 출신 고 왕수복 기생은 2004년 숨을 거두기 한해 전인 2003년까지 북한에서 수십 장의 레코드를 취입한 원로가수 입니다.
전시회도 이런 문화 예술인로써의 기생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관람 포인트인데요, 지금으로 치면 대중예술에 종사하는 연애인과도 같은 기생들.
그 시대에도 패션을 선도했던 패션리더였습니다.
1910년대부터는 여성들이 양장을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한 시기였는데요, 기생들은 전통적인 한복을 입으면서도 쇼올이나 스카프 핸드백 등으로 멋을 내 당시의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봐도 멋스럽죠?
Q2> 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태가 정말 자연스럽고 곱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요. 이렇게 문화예술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그 시절 많은 돈을 내고 예술교육까지 받은 기생이 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겨졌는지 궁금한데요.
A2> 네.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들고 퇴폐적인 모습으로 기생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은 일본 강점시대 일본이 우리 기생의 모습을 많이 왜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3패기생이라고 해서 정식 기생교육을 받지 않은 술집 아낙네들을 우리나라 기생 모습 으로 바꿔 묘사를 했던거죠.
한마디로 당당한 직업인이나 대중예술인이었던 셈인데 왜곡을 해버린겁니다.
우리의 예술의 중요한 한축을 담당했고 패션까지 선도했던 기생의 또 다른 모습.
매주 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7월 10일까지 전시회가 계속 된다고 하니까요.
우리 과거삶과 예술의 한 영역인 기생의 진짜 모습을 한번 관람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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