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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음악이 흐르는 세상]
등록일 : 200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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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음악이 흐르는 세상>시간입니다.

오늘은 수준 높은 오페라 공연을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만나보는 시간이죠.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를 잠시 벗어나 영화 스크린으로 찾아온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함께 하겠습니다.

화면 함께 보시죠.

네, 오늘은 ‘오페라 아이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유정우 클래식평론가 나와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정우 선생님과 함께하는 클래식 시간에 몇 차례 소개받았던 오페라 ‘아이다’를 오늘 드디어 제대로 만나보게 됐습니다.

Q1> 오늘 만나볼 ‘아이다’는 어떤 작품입니까?

A1> 아이다는 베르디의 스물여섯 개의 오페라들 중 스물네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860년대 이후에는 언제나 은퇴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돈 카를로를 시작으로 아이다와 오텔로를 거쳐 팔스타프에 이르기까지 만년의 네 작품들을 작곡할 때 베르디는 항상 그 작품이 최후의 작품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했다. 그런 까닭에 이 네 작품들은 베르디가 보여 주었던 많은 오페라 스타일들에 있어서 각각의 마스터피스에 해당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후기 걸작들 중 베르디의 대표작으로 불리기에 가장 합당한 작품은 역시 아이다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이 작품이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 스타일에 가장 충실할 뿐만 아니라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청중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이다에서는 스펙터클한 볼거리, 섬세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악, 그리고 완성도 높은 극적 구성이 완벽하게 융화되어 있다. 웅장한 볼거리에 매료되든 애절한 인간 드라마에 공감하든 어느 쪽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오페라이지만, 동시에 그 어느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은 아이다를 제대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을 모두 즐길 수 있을 때 아이다의 참된 매력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작품성과 흥행성 동시에 갖춘 블록버스터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아이다인 것이다.

블록버스터 급 오페라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Q2> 당시 이런 대규모 오페라가 탄생하기까지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A2> 베르디 후기의 대표적인 오페라 『아이다』는 1869년 11월 스웨즈 운하의 개통을 계기로 이집트의 국왕 이스마일 파샤가 수도 카이로에 "이탈리아 극장"이라는 극장을 세워, 운하의 개통식과 함께 극장에서 상연할 오페라의 새로운 작품을 당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베르디에게 의뢰하였다. 그러나 베르디는 이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고 두 번이나 거절했지만, 줄거리에 마음이 움직여 작곡하기에 이르렀는데 당시로서도 유래없는 거액의 작곡료를 받았다. 이 오페라의 소재는 프랑스의 유명한 이집트 고대사의 학자 마리에트 베이(Marriett)에게서 얻었다. 그는 당시 이집트 브라크 박물관장으로 있었는데 국왕의 의뢰로 이 작품의 줄거리를 창안해 냈다. 즉 고대의 사원의 제단 밑에 남녀의 해골이 발굴된 일이 있는데 그것을 힌트로 하여 여러 가지 사건을 첨가시켜 이 같은 대본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골자로 하여 프랑스의 대본가 뒤 로클(Du Locle)이 프랑스어로 쓴 것을, 마지막으로 기슬란조니(Ghislanzoni)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1870년 12월에 이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베르디는 작곡을 서둘렀으며, 동시에 배경과 의상도 파리에 주문하여 제작하게 했다. 그런데 1870년 여름 보불전쟁이 일어나서 그것들을 운반할 수 없게 되자, 다음 해로 공연을 연기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아이다의 제작은 다시 재개되어 1871년 12월 24일,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아이다는 초연된다. 아이다의 카이로 초연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으며 비평가들로부터도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제 오페라 ‘아이다’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해설과 함께 들어보는 시간 가질 텐데요.

Q3> 첫 번째 소개해주실 장면은 어떤 부분인가요?

A3> 대제사장 람피스와 장군 라다메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람피스는 에티오피아의 침공에 맞서 출정할 군대의 장수를 신탁에 의해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라다메스는 자신이 선택되어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금은 이집트 궁정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 결혼하게 되기를, 그리고 그녀에게 에티오피아의 왕좌를 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드디어 라다메스는 원정군 사령관으로 선정되고 출정의 날을 맞아 행진곡이 울리고 군중들은 ‘이기고 돌아오라’를 외친다. 아이다 그를 따라 이기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번민한다. 사원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는 예식이 계속된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 작곡가인 베르디의 아름다운 선율도 아름답지만 고대 이집트 왕궁을 그대로 재현한 무대도 굉장히 아름다운데요.

Q4> ‘아이다’의 화려한 무대가 정점에 이르는 장면이 있지요?

A4> 개선을 축하하는 군중들의 혼성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국왕·제사장·람피스·무사들·제사장 등이 들어온다. 암네리스 공주는 아이다와 시녀들을 데리고 등장하여 국왕 옆에 앉는다. 이집트 군대가 개선 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며, 계속하여 남녀 무용수들이 축하의 춤을 춘다. 그리고「환호로서 맞으라. 승리의 군대 용사들이 행군하는 길에 월계수 꽃을 펼칩시다.(Gloria all' Egitato)」를 노래한다. 개선군이 들어오고 마지막에 라다메스가 등장한다. 아이다 트럼펫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길다란 팡파르 모양의 트럼펫이 연주하는 당당한 선율을 바탕으로 웅장한 합창이 울려 퍼지는 이 장면은 모든 오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

그런데 주인공 아이다가 지금은 비록 노예지만 원래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인데요.

이집트의 장군을 사랑하게 되었단 말이죠.

Q5> 보통 러브스토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A5> 나일 강변. 이시스 신전 앞. 신전 속에서 제사장들과 무녀들의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작은 배 한 척이 강변에 닿고 암네리스 공주가 시녀들과 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배에서 내린다. 그녀는 라다메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행복을 빌려고 이 신전에 온 것이다. 다시 신전에서는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에 아이다가 라다메스를 만나기 위해 남몰래 나타나는데, 아이다는 다시는 조국으로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며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며 유명한 아리아「오! 나의 조국이여(O! Patria mia)」를 부른다. 이때 아이다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가 먼저 나타나 그녀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에티오피아의 남아 있는 군대를 토벌하려는 이집트 군의 진로를 알아내라고 명령한다. 이때 부르는 2중창은 아름다운 멜로디에 박력이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기로 하는데, 라다메스가 나타나자 아모나스로는 허둥지둥 덤비며 덤불 사이로 숨는다.

조국이냐, 사랑이냐. 기로에 놓인 모습이었는데요.

Q6> 독특한 것이, 특히 베르디의 작품 중에 이렇게 ‘애국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요?

A6> 베르디의 작품 가운데에는 <나부코>(1842), <제1회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 <에르나니>(1844), <잔 다르크>(1845), <레냐노의 전쟁>(1849) 등 애국적인 독립정신을 구가한 작품이 특히 뛰어났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압박하에 있어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탈리아 독립 운동의 외침도 점차 높아졌으나 베르디의 오페라는 그러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디는 오페라에 애국주의를 주입함으로써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베르디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참으로 애국의 상징이었다. 베르디는 밀라노의 호텔에서 뇌일혈로 쓰러져 1901년 1월 27일 87세의 일생을 마쳤다.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우뚝 선 이 거장, '소리'를 위하여 일생을 건 이 거장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식에는 20만이 넘는 대군중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제 준비된 마지막 장면을 봐야 할 것 같은데요.

Q7> 오페라의 마지막인 4막의 이야기가 남았죠?

A7> <1장> 암네리스는 라다메스를 회유하려 노력한다.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포기한다면 죄를 사해주겠다고 라다메스를 설득한다. 하지만 라다메스는 이를 의연하게 거부하고 감옥으로 향한다. 라다메스는 재판에서 암굴 생매장의 극형을 선고 받는다. 암네리스는 절규하며 쓰러진다. <2장> 라다메스는 암굴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때 암굴 속으로 아이다가 들어온다. 라다메스와 최후를 함께 하려 숨어든 것이다. 라다메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다를 이곳에서 내보내려고 온갖 힘을 다해 돌문을 열려고 하지만 문은 꼼짝도 않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땅위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천국에서라도 이룩하자는 말을 주고 받으며 이중창「이땅이여 안녕!」을 부르고, 아이다는 라다메스의 팔에 안기어 숨을 거둔다. 함께 죽어가는 두 연인의 잦아들어가는 소리에 암굴 밖에서 기도하고 있는 암네리스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오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아이다’를 만나봤는데요.

이번 주 일요일부터 영화관에서 오페라 ‘아이다’의 상영이 이루어집니다.

기존에 오페라 팬 분들과 오페라에 관심은 있으셨지만 접하기 어려우셨던 분들 모두에게- 해외의 유명 공연을 좀 부담이 적은 가격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관심 가져보시면 좋겠네요.

네, 오늘 좋은 말씀 들려주신 유정우 클래식평론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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