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전체메뉴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바로가기

공통뷰

완초에 전통 아름다움을 수놓다 - 장금숙, 이금자 완초장 [장인을 찾아서]
등록일 : 2010.09.09
미니플레이

이번 순서는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들의 작품세계를 엿보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장인을 찾아서> 순서입니다.

여름이 되면 더욱 인기 있는 전통 공예품이 있습니다.

바로 완초라고 부르는 왕골을 이용한 전통 공예품인데요.

완초 자체가 주는 시원한 질감으로 여름철에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네, 완초 공예 중에서 화문석은 이미 강화도의 명물이 될 만큼 유명한데요.

오늘은 이 완초를 이용해 전통 공예를 하는 완초장 장금숙, 이금자 장인을 소개해 드립니다.

직접 장인을 만나고 오신 서주희 문화캐스터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Q1> 오늘 소개해주실 장금숙, 이금자 장인, 어떤 분인지 간단한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A1> 네, 강화도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화문석’을 떠올리는 분들 많을 텐데요. 이 화문석과 관련된 분 만나고 왔습니다. 화문석은 왕골로 엮어 짠 돗자리를 말하는데요. 일명 완초 공예라고 합니다. 그리고 완초장이란 완초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데요.

오늘 소개드릴 분은 40년 넘게 완초 공예와 함께 해온 장금숙, 이금자 완초 장인이십니다. 강화도의 섬마을 교동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분이신데요. 강화도의 교동은 예로부터 왕골재배와 가공품인 화문석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화문석 하면 강화였고, 무엇보다 강화의 여인들은 베와 무명, 비단 등 옷감을 짜는 직조 솜씨 하나 만큼은 타고 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화의 전통 공예는 강화 여인들의 손을 거치면서 그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는데요. 그래서 장금숙 선생님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왕골 짜는 일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완초 공예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네, 그럼 전통과 역사가 있는 강화도의 완초 공예를 완초장 장금숙, 이금자 장인을 통해 만나봅니다. 먼저,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Q2> 화면을 보니 완초 공예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실용적인 편리함도 있는 것 같은데요. 완초 공예품만의 장점은 어떤 게 있나요?

A2> 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용수초, 현완, 석룡초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런 왕골을 이용한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 합 등 다양한데요. 일단 왕골 자체가 시원해서 땀을 잘 흡수 하는 습성이 있고, 또 겨울에는 냉기를 방지하는 습성이 있어서 계절에 상관없이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 사용해도 완초는 시간이 흐를수록 윤기가 강해지고, 부스러짐이 없이 질긴 것이 특징입니다.

Q3> 강화도 교동이 전통적인 완초 생산지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우리나라 완초 공예의 역사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A3> 네. 완초는 자연적인 우수성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완초 공예의 역사가 꽤 깁니다. 왕골이 신라시대에 이미 사용되었음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신라시대에는 이미 화문석 생산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었습니다. 또한 고려의 화문석은 정교함과 우수함이 외국까지 널리 알려져 선물용 및 수출품으로 각광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로 고려 때에는 사직신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을 정도로 고급품에 속했는데요.

그리고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 에 관청에서 수요를 빙자하여 민간에게 공납을 강요하는 몇 가지 품목 중에 왕골도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에도 왕골은 매우 귀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만화석, 용문석, 화문석, 잡채화문석, 채화석 등 여러 명칭의 왕골제품이 있어 좀 더 다양하게 발전을 했는데요.

왕골제품은 역사가 오랜 생활문화유산으로 한때 단절위기도 있었지만 1970년 이후 그 제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지금까지의 왕골제품은 깔 것과 용기에 불과하였으나, 염색과 굵기의 조절을 통해 다양한 기물을 창작하며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Q4> 완초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까 작업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던데요. 완초 공예의 제작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4> 네. 완초 제작에는 두 가지 기술이 있는데요. 하나는 손으로 엮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이 기구가 기계는 아니고 손으로 엮기 좋도록 만들어진 기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돗자리와 방석은 기구로 많이 짜고요. 원형방석과 작은 소품은 손으로 주로 만든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장인이 만드는 방법을 보니, 왕골을 물에 적셔서 물기가 축축한 상태에서 엮어 짜는데요. 이렇게 물을 묻혀서 하는 이유는 마른 풀이라 물기가 없으면 부스러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물을 묻혀서 적당히 수분을 유지시키면 작업도 편리하고 재료의 낭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합니다.

Q5> 장인들이 40년 넘게 완초 공예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점들이 있을까요?

A5> 네, 전통 공예를 하는 장인들의 한결 같은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계승하길 원하는 후손들이 적다는 것인데요. 여기에 완초 공예는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점이 5-6 년 전부터 싼 중국 제품에 밀려 우리 공예품의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풀 문화의 시초라 불리는 전통공예 인데도 불구하고 값싼 외국 제품에 밀려 완초 작품이 잘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데요. 이런 상황과 더불어 장인께서는 배우겠다는 전수생들이 실제로도 많지 않아 더 외로운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십니다.

Q6> 말씀하셨다시피 전통 완초 생산지로는 강화도가 유명한데요. 강화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왕골명산지는 어떤 곳들이 있습니까?

A6> 네. 강화도를 비롯해 충청도 충주, 경상도 영천, 안동, 풍기, 의성, 전라도순창, 보성, 나주, 영광과 함평 등지에서 전통 완초가 생산이 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오늘 소개해드린 장인들이 나고 자란 강화도의 교동이 완초의 최대 생산지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우리나라 최대의 완초 공예의 중심지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죠.

Q7> 그럼 40년 동안 완초 공예의 한 길을 걸은 장인이 말하는 완초 공예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A7> 네. 장인이 말씀하시길 오랜 시간 앉아서 하는 작업이니 만큼 인내심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완초 공예의 매력은 바로 완성되고 난 후의 모습이 자식보다 더 예쁘다는 사실인데요. 힘들지만 예쁜 작품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하고 그 마음가짐 하나로 40년 넘게 완초 공예를 해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완초 공예는 예민한 손놀림과 인내심이 없으면 해낼 수 없다고 하는데요. 화문석 한 장을 짜는 데만 60만번 이상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능숙한 사람이 밤낮없이 만들어도 보름 이상이 걸리는 일인데요. 소품이라 해도 최소한 수십만 번의 손길이 필요하고 크기와 무늬에 따라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 걸리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완초 공예는 결코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3년은 배워야 겨우 방석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일이 완초 공예라고 합니다. 수십일 걸려 노력하여 만든 제품이지만 플라스틱 제품과 중국의 값싸고 질 낮은 제품이 그나마 좁은 시장까지 파고들어 더욱 더 힘들다고 하셨는데요. 

더욱이 전통 공예 기술을 전수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보조금도 많지 않아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벌이가 되질 않는 현실에서 완초 공예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Q8> 끝으로 장금숙 이금자 완초장들이 앞으로 바라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8> 네. 장인들은 40년 넘게 인생을 걸어온 완초 공예의 매력을 우리 국민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애용해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계셨는데요. 또한 그런 바람과 더불어 옛 선조들의 풀뿌리 정신이 바로 이 완초 공예에 깃들어 있다는 그 사실만이라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네. 화려한 문양과 전통의 기법이 살아있는 완초 공예.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아름다움이 현대적으로 계승되길 바랍니다.

서주희 문화캐스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KTV 한국정책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저작권자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보와이드 모닝 (518회) 클립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