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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에서 가발까지 '수출역사 한눈에'
등록일 : 201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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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원도 기술도 없었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수출시장을 일궜을까요?

대한민국 영상 역사의 보고 ‘ktv 대한뉴스’ 속에 나타난 수출의 역사를 강필성 기자가 소개합니다.

6.25전쟁을 치른지 얼마되지 않은 1950년 대 기술이 없는 우리나라가 내세울 만한 상품이라곤 나전칠기와 도자기 등 전통 공예품이 전부였습니다.

공장에서 수출이라고 써진 완장을 차고 도자기를 만드는 인부의 모습에는 비장감이 엿보입니다.

전쟁으로 전국의 산은 민둥산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외화를 벌기 위해선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를 잘랐고, 버려진 고무신에선 고무를 뽑았습니다.

고기 한 점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농민들은 키우던 돼지를 수출선에 실었습니다.

1960년 대 초에 이르러선 경공업 제품이 주로 수출됐습니다.

여 직원은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었고 여직원 남동생은 나무토막으로 인형을 만들었으며 어머니는 토끼털에서 실을 뽑았습니다.

잘 살아보자는 모두의 노력은 중공업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1963년 어설프게 보이던 농기계 수출은 훗날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또 조립에 가까운 기술로 라디오와 선풍기를 제조해 수출한 것이 기술강국으로의 꿈을 키웠습니다.

국토면적은 세계 106위 인구는 세계 26위, 부존자원도 빈약한 우리나라가 당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출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수출은 1964년 1억 달러를 돌파한 지 7년 만인 1971년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그리고 6년 후인 1977년에는 대망의 100억 달러를 넘어서게 됩니다.

독일이 수출을 1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늘리는 데 11년이 걸렸고 일본도 16년이 소요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성과가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 짐작케 합니다.

1970~80년대 오일쇼크 등 대내외적인 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기술집약 상품의 개발과 수출에 주력했습니다.

세계에서 9번째로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8번째로 수출규모 5000억 달러를 이룬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보여준 기적의 역사는 세계 모든 나라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KTV 강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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