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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캐나다 형제, 60년만에 '유해상봉'
등록일 : 201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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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6.25전쟁 UN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UN군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올해 1차 재방한 행사를 위해 '영연방 4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200여 명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한 사연을 가진 참전용사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강필성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강 기자 어서오세요.

참전용사 가운데 60년만에 유해상봉을 한 캐나다 형제가 있었는데요, 우선 어떤 사연인지 전해주시죠.

네, 캐나다 참전용사 아치볼드 허시와 그의 형 조지프 허시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두 형제의 특별한 이야기는 6.25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 9월.

캐나다 청년 아치볼드는 이름도 낯선 머나먼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군에 자원 입대합니다.

그 이듬해 형 조지프도 동생이 걱정돼 직장을 그만두고 동생 몰래 자원입대하는데요.

조지프는 동생이 있는 프린세스 패트리셔 경보병연대에 배치됩니다.

형제는 같은 연대에 있었지만 계속되는 전투 속에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두 형제의 극적인 만남은 한참 뒤인 1951년 10월이 돼서야 이뤄집니다.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던 동생 아치볼드는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같은 성을 쓰는 부대원이 총에 맞았다는 겁니다.

아치볼드는 그 부대원에게 달려갔고 형 조지프는 동생과 상봉한 직후 숨을 거뒀습니다.

동생은 그때서야 형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참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형은 1951년 10월 부산 UN기념공원에 안장됐고 동생은 전쟁이 끝나자 형의 유품을 안고 고국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한편의 영화같은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캐나다로 돌아간 동생이 60여년만에 형을 만나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고 하던데요.

네, 그렇습니다.

지난 22일 아치볼드 허시씨가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유골함에 담겨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치볼드는 고국에 돌아가서도 전사한 형을 무척 그리워 했다고 합니다.

자신 때문에 형이 군에 입대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 사망한 그는 '한국에 있는 형 옆에 함께 눕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가족들이 그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한국을 방문한 겁니다.

데비/故 아치볼드 허시씨 딸

"(지난 2009년 아버지 대신 한국을 방문해) 큰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저는 많은 사진을 찍어 캐나다로 돌아가 아버지께 보여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름다운 곳'이라며 형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25일 두 형제의 유해 합장식이 부산 UN기념공원에서 거행됐습니다.

형을 60년이 넘도록 잊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아치볼드는 결국 유골이 돼 형의 곁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국가보훈처의 주최로 실시된 허시 형제의 추모식에는 캐나다 참전용사 대표들과 캐나다 대사가 함께 참석해 헌화와 묵념으로 이들 형제의 넋을 기렸습니다.

합장식은 캐나다 의식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졌는데요.

형제의 안타까운 만남을 하늘도 가슴아파하듯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던 허시 형제는 그렇게 UN묘지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60년의 세월도 막지 못했던 애틋한 형제애는 캐나다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가슴뭉클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박승춘 처장 /국가보훈처

"대한민국을 지켜준 형제분에 대해서 정부가 최상의 예우를 다해서 이런 행사를 한 것이고 UN군과 미군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켜줬는 지를 우리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두 형제가 함께 안장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보훈처의 UN군 재방한 행사가 큰 역할을 했는데요, 보훈처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UN군 재방한 행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보훈처는 지난 1979년부터 UN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 백명의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는데요.

아치볼드 허시씨의 가족이 함께한 올해 1차 재방한 행사엔 캐나다와 영국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200여 명이 초청됐습니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지난 23일 참전용사들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모습인데요.

6.25 전시관을 참전용사들이 둘러보고 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때묻은 사진과 물건을 찬찬히 응시하며 가슴에 묻어둔 기억을 하나 하나 떠올렸습니다.

클라우데 페팃 / 캐나다 참전용사

"대부분 20세 이하였습니다. 저도 16세로 아주 어린 나이였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은 전우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어떤 분들은 기념관에 새겨진 6.25 참전용사 명단에서 자신과 전우의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워했습니다.

품속에 고이 간직한 사진을 꺼내보이며 전우와 함께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과 옛 한국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참전용사들은 자신들과 전우들이 목숨바쳐 지켰던 대한민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모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로버트 모어 / 캐나다 참전용사

"사람들이 거친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저는 시민들과 위대한 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재방한 기간 중 참전용사들은 보훈처의 안내로 전쟁기념관과 현충원 참전 기념비 등 안보현장을 둘러보며 자신들이 흘린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체감하게 되는데요.

보훈처는 이를 통해 참전국과 우리나라의 우의를 더욱 두텁게 하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기억하고 보답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6.25전쟁기간 동안 21개국 연인원 180여 만 명이 참전했습니다.

현재 생존한 참전용사는 60여 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까지 2만 9천여 명이 재방한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허시 형제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UN군 참전용사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데요.

그들이 흘린 피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강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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