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뿌리를 내린 중국인, 바로 화교인데요, 그동안 많은 차별을 받고 살아왔던 화교들의 위상이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취재에 송보명 기자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학보씨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화교입니다.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지만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서학보 / 한국 거주 중국인
“저희 집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토지를 속된 말로 뺏겼을 때, 그 때 부모님의 슬픈 모습이 어린 기억 속에서 제일 아팠습니다.”
화교라는 신분 때문에 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던 서씨는 19살에 대만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결국 19년 동안 자신을 길러줬던 한국이 자신의 진정한 고향임을 깨닫게 된 서씨는 한국에 돌아와 차이나타운 개발에 참여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서학보 / 한국 거주 중국인
“제가 어릴 때는 화교라는 칭호도 없고 짱꼴라, 짱깨 이런 용어로 통용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주권자로서 한국국적으로도 꿔주고, 이런 점에서 봤을 때는 한국사회와 한국정부에서 마음을 열고 (화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씨처럼 요리사를 하다 무역업으로 업종을 바꿔 자수성가한 왕문영씨.
어린 시절, 각종 차별 때문에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왕씨는 대학진학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외국인 토지법이 바뀌면서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졌습니다.
왕문영 / 한성화교협회 부회장
“상업지역에는 60평 이상 (땅을)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웬만한 경제활동은 60평 갖고는 하기 어렵죠. 외국인 토지법이 바뀐 다음에는 그나마 오늘 제가 임대업이라도 할 수가 있었죠.”
130년 전 인천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화교들은 주로 이발사나 재단사, 요리사처럼 칼이나 가위를 만지는 생업에 주로 종사했습니다.
이승만 정부 이후 외환거래 규제와 무역업 규제, 거주자격 심사 강화 등 각종 차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화교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친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입니다.
음식업에 종사하던 화교들은 규제 완화에 따라 무역업·여행업 등으로 옮겨갔고, 2003년에는 영주권이 발급돼 복지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강경표 학예연구사 / 국립민속박물관
“핸드폰 개통에도 어려움을 겪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장개설도 힘들었고, 인터넷 회원 가입을 하려고 하면 주민번호 뒷자리 중에 5를 입력하면 오류 메시지가 뜨는 이런 생활 속의 불편함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화교학교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문제는 이미 수차례 논의돼 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탭니다.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않고 한국에 우호적인 화교의 사회적 경제적 경쟁력은 매우 큽니다.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KTV 송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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