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인 1.21사태가 일어난지 45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북한 특수부대원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씨는 한국의 빠른 산업화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 1.21사태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연아 기자의 보도입니다.
1968년 1월 21일 밤 10시 30분.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기습공격을 목적으로 서울에 침투합니다.
청와대 300미터 앞에서 경찰에 저지당하자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어 우리 군과의 교전에서 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후 대부분이 현장에서 사살되고 한 명만이 생포됐습니다.
김신조(1968년 1월 26일)
"기본훈련은 특수훈련, 유술, 격술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날 격전으로 민간인 8명을 포함해 종로경찰서 최규식 서장 등 38명이 숨지고, 52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당시 침투했던 북한 특수부대원 31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씨.
이후 사상을 전향을 통해 사회에 나왔고, 지금은 종교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김신조씨는 당시 북한이 청와대 기습을 계획했던 가장 큰 이유는 체제붕괴의 불안감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신조 / 1.21사태 당시 북 특수부대원
"남한을 빨리 공산화하지 않으면 이북이 오히려 무너진다. 그런 위기감을 느꼈어요. 남한을 빨리 공산화시키려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해야 한다."
특히 남한의 경제발전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신조씨는 최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1970년 새마을운동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빠른 속도로 발전한 한국을 보며 왜 김일성이 박 대통령을 빨리 제거하려고 했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당시 북한의 원래 계획은 미 대사관과 미8군 기지, 육군본부, 서대문형무소 등을 우선 접수하는 것 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2010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빈소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만난 이야기도 소개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인 자신에게 싫은 내색 없이 먼저 인사를 건내와 감사했다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자신이 살아남지 않았다면 북한은 청와대 습격 사건도 끝까지 잡아뗐을 것이라면서 천안함 폭침 날조극 운운은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KTV 이연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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