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첫 사립학교와 경남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어디 있었는지 아시나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진주의 의료와 교육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 유적들을 다시 찾아보는 뜻 깊은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SCS 서경방송, 차지훈 기자입니다
1930년대 진주시내 모습입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진주교회, 배돈병원, 그리고 광림학교 입니다.
옛 진주고등학교와 봉래초등학교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진주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일부 유적지는 현재 찾을 수가 없고,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러 진주시 봉수동 진주교회 인근에서 1900년대 초 진주의 역사를 조명하는 안내표지판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진주 최초의 사립학교인 광림학교와 경남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배돈병원이 봉수동에 설립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후세에 알리기 위해 추진된 행사입니다.
제막식을 찾은 주민들 가운데는 남다른 감회에 젖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상순, 진주시 강남동
"어머니가 산을 넘어서 남강에서 배를 타고 와가지고, 그때는 가마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당시에. 그래서 (배돈병원에) 와서 저를 낳았습니다"
이지호, 진주시 칠암동
"그때는 어리니까 아프다는 그것 밖에는 별로 기억이 잘 안 나고... 선교사, 서양 의사 분이 나를 수술을 해줬다는 고마움, 그것만 지금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돈병원과 광림학교는 호주 선교사 커를 부부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먼저 광림학교는 1906년부터 1939년까지 운영돼 어린이와 여성들의 문맹퇴치와 권익신장에 기여했습니다.
또 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3.1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배돈병원은 1913년부터 6.25 전쟁 때까지 주민들의 보건위생과 지역의료 근대화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6.25때 파괴된 후 복구되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창희, 진주시장
"큰 빌딩 하나 세우는 것도 가치 있고 큰 운동장 하나 세우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은 저는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아쉽지만은 (역사유적 안내표지판이라도) 놓아두는 것이 후세를 위해서 정말로 더욱 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와 병원 터 인근에는 진주교회 뿐만 아니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진주객사 등 찬란했던 진주의 주요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역사 찾기에 대한 시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의료도시, 교육도시로의 기반을 다진 배돈병원과 광림학교. 소중한 과거를 되돌아보며 진주의 옛 영광을 다시 찾는데 귀한 밑그림이 되고 있습니다.
SCS 차지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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