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1960년 당시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3.15의거 기념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3.15 의거의 의미를 유진향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1960년 3월 15일, 이른바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마산에서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돼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처음엔 평화적 시위로 시작됐지만 이를 강제로 해산시키려는 경찰과 대치하면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이에 격분한 시민들은 경찰서를 비롯해 국회의원, 경찰서장의 자택을 습격하고, 이 과정에서 일곱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진압되던 시위에 불을 지핀건 행방불명 됐던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 군 입니다.
김 군의 참혹한 시신이 바다에 떠올랐고 이에 분노한 온 시민이 또 다시 궐기해 경찰의 만행을 규탄했습니다.
마산시민의 항의는 인근으로 확산돼 마침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3.15의거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자 모태였습니다.
하지만 3.15의거는 4.19혁명의 그늘에 가려 독자적인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변승기 (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
“국가보훈법을 만들때 4.19범주 속에 3.15를 넣어버린 겁니다. 4.19혁명 속에 3.15가 파묻혀 버린 겁니다.”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3.15의거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이 강조됐고, 마침내 의거 발생 50년 만인 2010년 기념일로 지정됩니다.
마산 시민들만의 기념일에 머물렀던 3.15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그 위상이 높아진 겁니다.
이후 2011년엔 처음으로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렸고, 오늘은 세번째 기념식이 거행됩니다.
KTV 유진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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