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
자네 하여튼 장가가게 되면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왜요?
-아내라는 건 말이지, 말이나 소처럼 이렇게 부릴 줄 알아야 된다 이거야.
-아내를요?
-응.
-아내는 사랑으로 대해 줘야 되지 않아요?
-사랑으로 대하려고?
-네.
-왜?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
나는 얼굴을 못 보고 결혼해서 그런가.
하여튼 결혼해서...
그래,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얘기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오라이.
안녕하십니까?
영상기록 시간 속으로 임현식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죠?
저도 삼 칠은 이십일, 21번 밥 먹고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주말이 평일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토요일, 일요일 기본 2건에 또 다음 주에는 일요일도 2건입니다.
무슨 얘기인지 다 아시겠죠.
결혼식이죠.
그런데 이번 가을에 결혼식이 많은 것은 올 봄에 예비부부들이 윤달이 끼어서 결혼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그럽니다.
양력은 1년이 365일인데 비해서 음력은 1년이 354일 정도쯤 됩니다.
그래서 11일 정도 모자라다, 이런 얘기인데요.
그래서 부족한 날을 맞추기 위해서 2 내지 3년에 한 번씩 달을 추가하는데 그게 바로 윤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음력 3월이 있고 윤 3월이 또 있었는데요.
보통 윤달에는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하는 풍습이 있고 결혼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무슨 윤달을 따지나 하시겠지만 결혼식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안 지키면 집안에 뿌리가 없네.
배운 게 없는 집안이로세, 하여튼 별소리가 다 나오기 때문에 어른들 말씀을 따라서 하게 돼 있죠.
그래서 봄에 못 한 결혼식이 봇물 터진 것처럼 가을에 줄을 잇고 제 지갑은 톡톡히 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을을 맞이해서 결혼식, 우리의 혼례 변천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통혼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식 결혼까지.
그 변천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고요.
또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된 1960년대 말 예비부부가 결혼식을 준비했던 모습을 만나보고요.
또 우리 전통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전통혼례식 풍경과 폐백음식 마련의 현장을 찾아가볼 예정입니다.
그럼 시간여행 그때 그 시절 중매로 결혼하던 시절 남편 얼굴을 본 것은 언제인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여성들은 신혼여행을 어디로 갔는지 또 우리나라 결혼식의 변천과정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신부 연지곤지 찍고 신랑은 말 타고 혼례를 올리던 날, 동네잔치가 열리던 전통혼례식의 바로 그 현장으로 떠나보시죠.
-예부터 사람들이 관혼상제 의식 중
가장 중요한 절차로 여긴 혼례.
공자가 이르기를 얼음이 녹으면 농상이 시작되고 혼례를 치르면 사람의 일이 시작된다고 했는데요.
이는 세상에 태어나 진정한 한 사람의 몫을 하는 것은 혼인을 하면서부터라는 뜻입니다.
-공자님은 결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시는데 현대적으로 풀이를 하자면 결혼은 사회의 새 구성원들을 만드는 기초단위가 되잖아요.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가족이 형성이 되고 또 가족이 사회관계에서 기반이 되니까 그런 뜻에서 관계의 기초라고 할 수가 있겠죠.
-결혼의 의미와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시대에 따라 형식과 절차는 조금씩 바뀌어왔는데요.
유교사상이 강화되었던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이혼이나 재혼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 이후로 오면서 유교를 점점 더 굉장히 아주 근본주의적으로 하면서 일부일처제로 한 거죠.
그리고 혼외에서 태어나는 것을 금기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거나 그렇게 혼자 살게 된 사별을 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재혼을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 것도 제가 볼 때 역시 재산이 나눠지는 것을 굉장히 방지한 그런 방책인 것 같고요.
-흔히 우리의 전통혼례라고 하는 것은 조선시대 혼례풍습을 이르는 것으로 형식과 절차를 매우 중시 여겼습니다.
결혼은 부모님의 중매로 이루어지고 혼인 날짜는 신부 집에서 잡게 되는데요.
보통 악귀가 없는 손없는 날을 택일하고 윤달에는 혼례를 피했습니다.
-윤달은 주로 안 좋은 형태로 봐야 되는 거니까 이승이 아닌 저승 형태죠.
이는 일반적으로 귀신이라는 것 관계돼 있는 사람들이 하늘의 천상에 올라가서 부름을 받고 대기하는 기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주로 이사랄지 묘 이장이랄지 봉분사초랄지 이런 부분에 중점적으로 흉과 관계된 날인 성수기입니다.
반대로 경사 같은 잔치는 그런 액운 부분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봐야 되죠.
-집안의 결합으로 맺어진 혼례.
이때까지 신부는 남편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였는데요.
이에 혼례는 신부를 배려해 신부의 집 앞마당에서 치러졌습니다.
-진짜 얼굴도 못 본 신랑을 어느 날 갑자기 보고 잠자리에 든다는 게 진짜 현실적으로 너무 당황하거든요.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친정엄마가 아무래도 여자 입장에서 많이 다독거리고 안정시키는 측면이 첫째 고려가 됐던 것 같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신방이라는 자체가 결국은 신부가 머문 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자기 집에 있다는 것을 굉장히 안정적으로 취하면서 합방을 이룰 수 있는 그런 근간 부분을 남자측면에서 제공해 줬다고 보여지는 거죠.
-전통혼례에서 신부 집에 온 신랑은 장모님께 백년가약을 맹세하는 의미로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가슴에 안고 들어갔는데요.
대개 원앙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원앙이 아닌 기러기라고 합니다.
-한 배필이 죽으면 전혀 다른 배필을 받아주지 않고 한평생 그 배필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미물이지만 참 본받아야 될 하나의 뜻에서 수양조라고도 하고 인간이 혼인정신에서 받들어진 기러기를 상징물로 뒀던 거죠.
-혼례를 올리고 신부 집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면 다음 날 신부는 시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서 시집가다, 장가가다라는 표현이 유래된 것입니다.
혼례는 갑오경장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변화를 맞게 되는데요.
1920년대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에서 신도들이 결혼식을 치르면서 신식 결혼이 소개되는데요.
1930년대에 이르면 신랑의 예복이 양복으로 대체되고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거나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웨딩드레스가 하얀색이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통활옷은 굉장히 화려하거든요.
다채로운 색깔, 예를 들어서 빨간 치마에 초록색 저고리를 입는다든지 그렇게 했었는데 하얀 옷은 우리는 상복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얀 드레스를 입는 것은 굉장히 전통... 어른들의 눈에는 아주 이건 불경스러운 일이죠.
굉장히 좋지 않은 그런 상징이 뜻해지니까.
그래서 면사포를 쓰고 화관을 쓰고 그렇게 하다가 점점점점 흰 한복보다는 하얀 드레스로 변하게 됐죠.
-한편 과거에는 결혼하는 나이가 평균 14살에서 16살이었는데요.
조혼이 성행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대가 끊어지기 전에 빨리 결혼을 시켜야 된다.
그런 뜻에서 남자는 열두어 살만 돼도, 여자들이 열대여섯 살 되면 그냥 혼인을 시켰거든요.
그런 것도 한 가지 이유가 있고그 다음에 또 하나의 이유는 뭐냐 하면 정략적인 결혼을 하면서 혹시라도 좋은 신랑감 혹은 좋은 신붓감을 다른 집안에 뺏길까 봐.
미리 말하자면 선점을 하는 거죠.
요즘 말로 말하면 찜을 한다고 그러죠.
-1945년에 광복 그리고 1950년 6.25전쟁을 거친 후에도 결혼은 20살을 넘기지 않았는데요.
이때는 경제적인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형편이 어려웠던 서민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남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1960년대 들어 서양식 결혼과 자유연애가 보편화되면서 결혼식에도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잘 보셨죠?
그 옛날에는 신랑, 신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결혼을 하곤 했죠.
그래도 정말 잘들 사셨어요, 우리 어르신들이.
저희 때만 해도 중매결혼이 거의 다였습니다.
주말이면 다방에 젊은 남녀들이 가득했어요.
주로 친척이나 부모님들 또 친구, 이런 사람들이 중매를 서고 또 부모님들은 서로 상대방 얼굴을 싹 쳐다보고 자, 너희들끼리 서로 얘기들 해 하고는 싹 빠져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딱 둘만 남는데 도대체 이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아득해지는 거죠.
제가 평소에는 말을 아주 잘했거든요.
우리 어머니한테도 잘하고 여동생한테도 잘하고 다 잘했는데 이상하게 그 여자하고만 있으면 어버버버...
도대체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입이 그냥 바싹바싹 마르고 물만 홀짝홀짝 계속 마시다가 큰마음먹고 하는 말이 여기 엽차 한잔 주시오.
참나...
그래도 사람들은 다 결혼 잘 했습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 눈에도 다 좋아 보였거든요.
물론 가끔 속아서 결혼했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1960년대 이후 자유로운 연애결혼과 또 전용 결혼식장에서 그리고 혼수전쟁까지 달라진 결혼문화를 한번 살펴보죠.
이번에는 팡파레가 울리는 결혼식장으로 한번 출발해 보겠습니다.
-딸을 낳으면 벽오동을 심어 그것으로 장롱을 만들어주시던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
하지만 19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서울로 직장을 찾아간 자녀들에게 전통결혼을 요구하기 어려워지는데요.
특히 부모님이나 친척의 소개로 하던 중매결혼은 자연스레 연애결혼으로 전환을 맞게 됩니다.
-농촌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도심으로 다 진출을 하고 이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와서 혼인하기도 뭐하고 그러다 보니까 도시에서 혼례는 해야 되는데 혼례하는 장소 자체가 마땅한 장소가 없는 거죠.
옛날에는 마당 자체가 다 혼례장소였는데.
-또한 6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전용예식장에서 결혼을 하면서 신부 화장과 드레스를 함께 서비스하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전라북도에 여성회관이 준공돼서 육영수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개관을 보았습니다.
아담한 이 여성회관에는 예식장을 비롯해서 도서실, 교양실 등이 마련돼 있는데 이 지방 여성들의 복지생활 향상을 위해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
조금은 더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그래서 이색적인 장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들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지난 9일 부산시청 앞을 떠난 9.18수복 기념 역전마라톤경주에는 7개팀 1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 제 고장의 명예를 걸고 분전했습니다.
이날 시상식 전에서는 강원도팀의 정천관 선수가 유니폼 차림 그대로 화촉을 밝혀 수많은 시민들의 끝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백년을 가약한 색다른 결혼식이 베풀어져 화제를 모았습니다.
서울시내를 굽어보며 진행된 이날 식장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흙을 파며 대지에 굳세게 살자고 호미와 해바라기씨를 예물로 주었고 신부는 신랑에게 나락과 삽을 예물로 주었습니다.
기발하고 간소한 결혼식을 올린 이들 신혼부부의 행복을 비는 바입니다.
-한편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됨에 따라 본래의 절차나 규범이 실생활에 적합하지 않게 되는데요.
이에 혼례뿐만 아니라 제례, 상례 등의 의식도 간소화하고 현대화하자는 뜻에서 새로운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합니다.
-새로운 준칙에 의하면 혼례에 있어서는 약혼식을 따로 하지 않고 당사자의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만을 교환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함잡이를 보내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 신행으로 인한 번거로운 폐해를 없애기 위해 신행은 혼인 당일날로 하도록 했습니다.
혼인식순에 있어서도 개식, 신랑 신부 맞절, 신랑 신부 서약, 성혼선언 그리고 직접 그 자리에서 혼인신고서에 날인을 한 후 신랑, 신부가 하객에 대해 인사를 함으로써 끝내도록 하는 한편 혼례에 앞서 인쇄된 청첩장 그리고 식장에서의 화환, 화분 등 진열을 금하며 답례품이나 가정 외에서의 음식접대는 해서 안 되겠습니다.
-함 없이, 청첩장 없이, 주례 없는 3무 혼례식의 권장에 따라 결혼식은 다소 검소하고 간략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일생의 뜻깊고 중요한 행사인 결혼식을 형식에 치우치기보다는 결혼의 의미를 깊이 새기자는 취지였습니다.
대신에 1970년대 들어 신혼여행을 가는 문화가 새롭게 등장하는데요.
결혼식이 끝난 후 70년대 초반만 해도 택시를 세내어 새로 생긴 남산지하터널이나 북악스카이웨이를 한 번 돌고 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70년대쯤에는 온천이 참 유행을 했었죠.
온양온천, 이런 데는 몇 시간 안 가고 가서 하룻밤 자거나 이틀 자는 것, 그 정도만 해도 신혼여행으로 됐다가 그다음에 80년대, 90년대 되면서 경제가 성장을 하면서 제주도가 아주 각광지로 받았죠.
-한편 1980년대는 경제성장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컬러TV를 비롯한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이 인기 있는 혼수품으로 유행하는데요.
이에 따라 혼수비용이 높아지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호화혼수를 근절하기 위해 표준혼수를 제정하는데요.
가구는 옷장과 화장대 1개씩, 침구는 솜이불과 담요 1점, 예물은 시계 또는 18금 반지 1개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수입자율화 조치와 함께 해외 고가의 제품이 수입되면서 일부 부유층의 경우 수입가구에서 가전제품은 물론 시어머니의 밍크코트까지 챙기는 사회문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고부간의 갈등과 이혼의 빌미가 되기도 했죠.
-혼수가 많이 변질이 돼가지고 정말 두 사람한테 필요한 물건을 주는 것보다는 거기에 상징적 가치나 사회적인 의미가 많이 부여가 되면서 자존심 싸움 혹은 사회에 나는 이런 사람이랑 결혼했다, 우리는 이런 대접을 받았다, 이런 위치에 있다 하는 것을 이렇게 사회적으로 공표하는 방식으로도 많이 변질이 됐죠.
그래서 그런 일로 인해서 뜻하지 않게 또 어떤 때는 비극도 일어나고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해외여행이 쉬워지면서 신혼여행으로 동남아는 물론 유럽까지 해외여행 가는 부부들이 많아졌으며 결혼비용 1억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식이 사치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돈으로 해결하는 물질만능주의시대.
가마 타고 전통혼례를 올리던 어머니들은 지금보다 옛날 결혼식이 더 그립다고 하는데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의 하나인 결혼식.
요즘은 예식장에서 30분 만에 결혼식을 끝낼 만큼 형식과 절차는 많이 간단해졌습니다.
하지만 과거 기러기를 안고 장모에게 백년가약을 맹세하던 간절한 마음, 그 정신만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잘 보셨습니까?
사실 저도 딸 셋을 결혼시켰는데요.
딸 결혼하는 것 보니까 준비해야 될 게 정말 많더라고요.
침대도 사야 되고 또 텔레비전도 사야 되고 냉장고도 사야 되고 세탁기에다가 청소기, 믹서기.
하여튼 둘이서 의논해서 알아서 사겠다고 하지만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옛날에는 요강도 꼭 샀는데 요강은 요즘에는 안 사더군요.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또 다른 데 필요한 곳에 보태쓰는 것.
참 기특하더라고요.
예전에 집은 남자가 사고 또 혼수는 여자가,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저희 딸들도 결혼 준비하면서 저도 어느 정도는 보태줘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도 안 내밀고 자기들끼리 다 알아서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심 기분도 좋았습니다.
역시 제가 교육비를 들였던 것만큼 딸은 잘 가르쳤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제 자랑만 했습니까?
이번에는 TV문화극장 시간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그런 말 많이 들어보셨죠?
제가 결혼할 때 즈음에도 가정의례준칙에 의해 형식적인 절차보다는 소박하고 검소한 결혼식을 강조하는 그런 추세였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일생일대 단 한 번뿐인 결혼식. 제대로 하고 싶은 신부와 또 형식, 절차 다 필요없다고 무조건 간소하게 하자는 신랑.
여러분은 어떤 결혼을 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바로 보시죠.
레디, 액션!
-미안, 미안.
많이 기다렸지?
무척 토라졌군.
-꼬박 30분이나 기다렸어요.
어쩜 그렇게도 태평하시죠?
우리 결혼식도 한 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내가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미안하게 됐어.
-우선 청첩장부터 만들어 보내야 하잖아요.
-아니, 청첩장은 무슨 청첩장이야.
그 고지서 같은 것.
그런 건 보내지 않는 게 좋아요.
언젠가도 내가 말했지만 결혼식은 되도록 간소하게 하기로 말했잖아.
그냥 친지들에게만 알리고.
-저는 반대예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그렇게 시시하게 넘길 수는 없잖아요.
-그런 보람을 원한다면 아주 구식결혼식으로 하지 그래.
-혼례식은 인간대사의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정중하고 엄숙하면서도 명랑하게 치러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결혼식은 어떠했습니까?
850년 전의 예법인 육례를 갖춰야 한답시고 육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예를 갖추기 위해 허둥지둥했고 또 많은 낭비를 일삼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가정의례준칙에 따른 혼례식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예식장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습니다.
의례란 그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결코 형식적인 절차나 겉치레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조국 근대화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생활의 근대화를 우리 스스로가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진짜 보람 있는 식은 체면을 떠나서 소박하게 정성껏 치르는 것이지.
-네, 준칙에 따른 결혼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혼례란 약혼에서 혼인을 거쳐 신행까지의 모든 의식절차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사자간의 합의로 혼인날이 결정되면 혼례식에는 친척과 가까운 친지에 한해서 초청하고 청첩장은 내지 말 것이며 미리 구두로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혼례식 장소는 반드시 신부 집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형편대로 신랑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공회당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 관공서는 회관, 공회당 등을 혼례식 장소로 제공하도록 돼 있습니다.
주례는 혼인 당사자가 잘 알고 존경하는 가까운 어른으로 합니다.
신랑, 신부의 혼례복장은 단정하고 정결한 옷차림으로 하며 신랑이 한복을 입을 경우에는 두루마기를 입을 것입니다.
꽃을 다는 경우에는 신랑, 신부, 주례와 양가의 부모 또는 그 대리자에 한해서.
하객은 화환 등을 보내지 않습니다.
혼인서약이 끝나면 신랑, 신부는 미리 준비한 혼인신고서에 서명날인하고 혼인신고는 당일 하도록 합니다.
-알겠지, 준칙에 의한 결혼식을?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간섭을 안 할 테니까요.
-역시 여자다운 데가 있군.
내 말대로 해요, 응?
그럼 멋있는 선물을 줄게.
자, 그만 가지.
퇴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여러분, 잘 보셨죠?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욕심이 끝도 없습니다.
이때만 해도 혼수에 대한 부담이 굉장해서 뉴스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혼수 준비에 등골이 휘고 또 제대로 안 해 가면 두고 두고 시댁에서 구박받는 일도 흔했습니다.
저 옛날에는 우리 사촌누님 한 분 계셨는데 그 누님 집에서는 만날 접시 깨지는 소리, 요강 깨지는 소리가 났어요.
혼수를 적게 했느니, 많이 했느니 하면서.
한 3일에 한 번 정도는 하여튼 들리더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혼수를 많이 해 간다고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분수에 맞게 서로 이해하고 챙겨주면서 사는 게 예나 지금이나 최고겠습니다.
다음은 세상 돌아보기 코너입니다.
여러분, 어여쁜 신부가 연지곤지 찍고 시집오던 날 기억나시죠?
얼마나 곱던지, 옛날 생각이 정말 절로 납니다.
이렇게 저처럼 추억에 잠기실 분들을 위해서 제가 여러분들을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현장으로 초대를 할까 하는데요.
전통혼례 현장과 폐백음식을 맛보러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그럼 떠날 준비 되셨으면.
가마에 탄 신부님, 자꾸 고개 내밀지 마시고요.
시청자 여러분들은 가마 뒤에 잘 따라오셔야 막걸리라도 한잔 할 수 있습니다.
출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자던 약속.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언약인데요.
지금부터 결혼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전통결혼의 향기가 물씬 나는 현장 속으로 떠나봅니다.
여기는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
우리의 옛 가옥에서부터 흥겨운 농악놀이, 투호 던지기 그리고 줄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곳 민속촌에서는 매일 두 차례 전통혼례행사가 열리고 있는데요.
마침 혼례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교배상 위에는 대추, 밤, 감 등 여러 가지 전통혼례에 필요한 재료들이 놓이는데요.
모두 한결같이 신랑, 신부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이제 혼례의 주인공들을 만나볼까요.
-곱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도 보이고요.
-혼례 시작이 임박하자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
아이들에서부터 외국인들까지 최근 들어 우리 전통혼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전통혼례의 어떤 매력에 빠져드는 걸까요?
드디어 멋지게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신랑이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오직 배우자만을 사랑한다는 기러기를 받아들고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며 정성스레 절을 올립니다.
곧이어 수줍은 미소를 띤 신부가 신랑을 향해 하나둘 발걸음을 옮기고.
신랑, 신부는 혼례에 앞서 정성스레 두 손을 씻는데요.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큰절을 올립니다.
이윽고 받아든 술잔으로 하늘과 땅을 향해 혼인을 서약하는데요.
표주박잔에 술을 받고 정성을 다해 혼례를 올립니다.
-혼례를 마친 뒤에는 전통혼례의 대미를 장식할 가마행렬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곳은 서울 제기동의 한 상가.
전통방식으로 폐백음식을 만들고 있는 곳인데요.
-신랑, 신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원하며 정성도 듬뿍, 멋과 맛도 듬뿍.
드디어 폐백음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의 폐백전통은 신식 결혼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폐백실에 음식을 잘 차려놓으니 우리 전통 폐백음식의 멋이 배가 됩니다.
-신부 어머님, 마음에 드시나요?
-양가 어른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출발을 알리는 두 사람.
폐백음식에 담긴 결혼의 의미와 전통의 지혜까지 모두 이어받아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잘 보셨죠?
저도 어릴 때 동네에서 결혼식이 있을 때면 신랑, 신부가 말과 가마를 나눠 타고 동네 한 바퀴 도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신랑이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찢어져라 웃는 걸 보면 어떻게 보면 밉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행복해 보이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도 얼른 크면 저런 결혼 몇 번 해야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 결혼.
이날은 신랑, 신부 모두에게 다 뜻깊은 시간인데요.
부부 여러분들.
시집, 장가 오던 날 떠올리면서 가을을 맞아 설렘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서로의 소중함도 되새겨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인데요.
제 친구 아들녀석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이 녹화가 끝나면 바로 또 가봐야 할 텐데요.
축의금은 또 얼마나 해야 될지.
걱정할 것 없죠.
가정의례준칙에 의해서 하면 되는 것이니까.
아쉽지만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대규야!
그래서 너는 지금 스물일곱 아니야.
너는 언제쯤 결혼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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