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입장에서 6.25 전쟁은 북한과 혈맹관계를 설명하는 전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중국 내에서 6.25 전쟁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면서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달리 '북한의 남침'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선즈화 교수가 국내 한 심포지엄에 초청됐습니다.
보도에 강필성 기자입니다.
[기사내용]
정전 60주년이었던 지난해 중국정부는 6.25전쟁에 대해 '조선전쟁'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습니다.
중국은 지금껏 '항미원조전쟁' 즉 침략자인 미국에 맞선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대한 명분을 세웠습니다.
비록 공식적으론 북한의 남침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6.25 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 내 학자들 사이에서 6.25전쟁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남침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선즈화 화동 사범대 교수가 국내 한 심포지엄에 초청됐습니다.
선즈화 교수는 중국정부의 '조선전쟁' 언급에 대해 중국의 참여를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선즈화 교수/중국화동사범대
"항미전쟁은 전쟁에서의 중국의 지위를 강조한 것이고 조선전쟁은 전쟁에서의 중국의 역할을 축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전쟁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의도와 책임을 부각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가 북한의 남침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선 교수는 중국이 북한의 남침을 공식 인정하게 될 시점에 대해선 북한과 중국이 공개적으로 관계가 멀어질 경우라고 말했습니다.
선 교수는 중국의 6.25전쟁 참전과 관련해선 개전 초기부터 고려됐다고 밝혔습니다.
선즈화 교수/중국 화동사범대
"(중국은 파병을 고려했지만) 개전 초기 승리하고 있을 땐 김일성이 중국의 파병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전 두번의 중공군 파병 기회가 있었지만 북한이 그 기회를 놓쳤고 결국 전세가 불리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중공군이 38선까지 진격한 뒤 1951년 1월 유엔이 정전협상을 제의했지만 바로 정전협상이 체결되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간 지속된 것에 대해선 마오쩌둥이 연합군의 반격능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KTV 강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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