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을 맞는 올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수흥 선생이 선정됐습니다.
일제에 맞서 결사단체를 조직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이수흥 선생을 유한권 국민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사내용]
1905년 이천에서 태어난 이수흥 선생은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식 교육에 반발해 학교를 자퇴합니다.
19세가 되던 1923년 항일의 뜻을 품고 독립운동가 채상덕을 찾아 만주로 건너갑니다.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지린성 신명학교에서 독립군 간부 전술교육 받은 이 선생은 대한통의부에 가담하면서 항일활동에 나섭니다.
인터뷰> 이미숙 / 경기도 화성시
"독립 70주년을 맞이해서 아이에게 우리나라 광복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또 그 상황과 인물들에 대해서 역사적인 활동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독립기념관을 찾아오게 됐습니다."
1925년 일제 경찰의 기습 공격으로 참의부원 다수가 전사한 고마령 참변 이후 권총과 실탄을 갖고 국내로 들어와 의열 투쟁을 벌입니다.
선생은 군자금을 모집하고 서울 동소문 파출소 이천 백사면 면사무소를 습격해 순사 와 면서기를 사살하는 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김병기 전문위원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수흥 선생이 우리나라 무장투쟁에 가장 선봉하셨던 분이시다."
그러나 반역자의 밀고로 끝내 일본 경찰에 체포돼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9년 2월 교수형으로 순국했습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이수흥 선생의 유해는 1976년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선영 묘역에 안장 됐습니다.
선생은 처형장에서 동포여러분들은 끝까지 싸워 독립을 꼭 성취하여 주기 바란다며 의연한 모습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외친 후 수형대에 올랐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신 분입니다.
선생의 고향 경기도 이천 조성된 이수흥 공원에는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그의 뜻을 기리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이천 시민들의 추모제가 오는 27일 열립니다.
인터뷰> 조병돈 시장/ 경기도 이천시
"뜨거운 민족애와 불타는 애국심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굳센 의지는 영원히 후세의 남을 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펼친 선생의 생애와 활동을 담은 특별전시회는 이달 한 달 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계속됩니다.
국민리포트 유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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