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된지 70년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한 서울 한 복판에 해방 직후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서울 남산 자락 해방촌인데요.
이 해방촌에 예술과 젊음이 채워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남현경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남산 자락에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른바 해방촌.
1945년 해방이 되자 공산당이 싫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당시 사격장이 있었던 움막을 치고 살았던 곳입니다.
인터뷰> 장금주 (89세) / 서울 용산구 신흥로
"사격장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나가질 못했어요. 땅땅 총소리가 들리면 이리로 오는 것 같아서 나오다가도 총소리가 들리면 뛰어들어가고 했어요"
그후 6.25 전쟁 때 피난민과 농지가 없어 살 길이 막막했던 사람들이 산동네로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입니다.
깍아지른 듯한 비탈진 골목길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여서 한번 오르내리기도 힘이듭니다.
주로 장사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간 이곳 주민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던 곳이 바로 해방교회입니다.
판자촌만 있던 1947년 당시 세워진 해방교회는 삶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 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단골이 찿고 있는 신흥시장은 해방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곳입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시장엔 어르신들이 반세기 훨씬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현장음> 김주철 (84세) / 해방촌 방앗간 운영
-지금도 단골이 있으시군요
"그렇죠 그분들이 와서 짜가죠."
현장음> 이학규 (92세) / 해방촌 채소가게 운영
"내가 20살 때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거예요."
70년이 넘도록 한자리에서 시계를 수리하고 있는 95살의 할아버지는 해방촌의 역사를 함께한 산증인입니다.
인터뷰> 이정후 (95세) / 시계가게 주인
"일본사람에게 기술을 배웠어요. 오래됐지 일본사람 집에가서 잡일을 다해주면서 (배웠어요)"
빨갛게 녹슨 자물쇠로 채워진 쪽방 세월의 흔적으로 삭아버린 나무 문틀,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길은 수십년 묵은 사연들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실향가족들의 비극을 담은 1959년 발표된 소설 '오발탄'의 무대가 바로 해방촌입니다.
인터뷰> 장인환 (71세) / 해방교회 장로
"해방촌의 특색이 정말 이북에서 넘어온 피난민의 강인한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골목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골목길에 환한 벽화가 그려지고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분위기 있는 까페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습니다.
해방촌 골목길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활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던 분들의 삶의 터전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해방촌.
변화의 바람 속에 역사와 특성을 살린 개발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국민리포트 남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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