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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의 싸움…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전 '계속' [현장속으로]
등록일 :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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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군이 6.25전쟁 당시 산화된 전사자를 찾는 유해발굴 작전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요.

올해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 유해발굴 작전이 시작된 지 한달 가량이 지났습니다.

취재기자와 함께 유해발굴사업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영은 기자, 어서오세요.

앵커>

최기자, 유해발굴사업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기자>

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하반기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지 한달 정도가 지났는데요.

벌써 곳곳에서는 많은 유해와 유품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 다녀왔는데요.

화면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가 머리뼈, 척추, 그 다음 팔뼈, 엉덩이 뼈, 다리뼈와 전투화까지 나왔습니다."

기자>

차가운 땅속에 웅크린 채 머물던 전사자가 비로소 60여년 만에 발견됐습니다.

유해 발굴이 한창인 이 곳은 경기도 연천 무명 293고지인데요.

6.25 전쟁 당시 이른바 병참선 확보작전이라 불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약 3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장소입니다.

전사자들의 유해는 물론 신고있던 전투화와 사용하던 총기 등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산자락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당시 사용하던 포탄이 박스째로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국방부는 지난 2000년부터 이 같은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월이 많이 훌렀기 때문에 유해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소재 파악도 어렵고, 발굴 작전 과정도 산에서 이뤄져 위험한 상황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은 한 분이라도 더 찾아낸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신필순 중령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소명으로 마지막 한분을 찾는 그날까지..."

박진철 상병/ 5사단

"외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다리에 총을 맞아 부상 전역하셨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전우를 찾는 마음으로.."

기자>

이처럼 계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발견된 유해는 8천500여 구, 이 중에서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사자는 109명에 불과합니다.

앵커>

6.25전쟁 전사자가 약 13만 명으로 알고 있는데..

발굴된 유해는 생각보다 많지 않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여전히 12만 명의 전사자는 차가운 땅 속에 묻혀있다는 건데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유해의 소재 파악이 쉽지 않고요.

그리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발견하더라도 신원확인이 어려워서 발굴된 유해 대부분은 유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 필요한 유가족 DNA 시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자>

현재까지 유전자 시료는 전체 대비 20%, 그러니까 약 5분의1정도의 유전자 정보만 확보된 상황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생존자들의 제보나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관심, 그리고 참여가 상당히 중요해 보입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전사자들이 가족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견된 전사자 중에서 이번에 드디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분도 계시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하는데요.

6.25 전쟁 때 전사한 고 정성준 하사의 가족입니다.

정성준 하사는 유해발굴 작전 중에 발견돼 65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화면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6.25전쟁 중 목숨을 잃은 고 정성준 하사가 65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구보다 듬직했던 모습대신 유품으로 돌아온 고인을 마주한 순간...

평생 애타게 그리던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정수조 / 고 정성준 하사 동생

"살아 생전에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5월 유해발굴 작전 중 발견된 정성준 하사의 유품이 가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정 하사는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이른바 철원 전투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전사해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유해조차 발견되지 않았었는데요.

가족들은 그동안 납북 포로 소식이 들릴 때마다 혹여 정 하사가 있을까 눈여겨 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살아계실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고, 평생을 그리워한건데요.

이번에 유해로 발견되면서 비로소 만나게 됐습니다.

애석하게도 생존해 계신 모습은 아니지만, 유가족들은 이렇게라도 다시 보게 돼 다행이라며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정문웅 / 고 정성준 하사 동생

"입대한 지 65년 만에 동생 집에 오시게 됐는데, 너무 기가 막히고.."

기자>

정성준 하사의 경우에는 그래도 인식표, 그러니까 군번줄이 함께 발견돼서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신원이 확인 됐습니다.

앵커>

그렇네요. 

저렇게 인식표가 많이 발견되면 금방 신원이 확인 될 것 같은데요.

기자>

네, 그런데 전쟁 당시 우리 국군은 인식표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군이 참전하면서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초기에 참전한 분들은 인식표가 없다는 건데요.

따라서 정 하사처럼 곧바로 신원확인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유해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가족에게 전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이학기 대령은 이 날 유해발굴사업이 '시간과의 싸움이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흘러, 유해가 묻힌지도 오래 됐기 때문에 유전자 시료 채취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유가족의 DNA 시료 채취도 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학기 대령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DNA 시료 채취를 하더라도 형제분이나 직계존비속의 DNA가 가장 유력한데 이분들 연세도 80세 가까운 노령이시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시간과의 싸움이다, 저 말이 굉장히 와닿고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기자>

네, 유해발굴 작전, 힘든 과정이지만 유가족의 염원과 또 국민 관심이 모아져서, 하루 속히 더 많은 전사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네, 최영은 기자,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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