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현재의 무역강국으로 도약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과거 대한뉴스를 통해 무역의 날 변화상을 정리했습니다.
이충현 기자입니다.
양송이를 수출하며 연간 3천 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일군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수출입의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1964년, 첫 1억 달러 수출 돌파를 기념해, '수출의 날'을 제정한 것이 지금 '무역의 날'의 전신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합판과 타이어, 가발 등이 수출의 주종을 이뤘고 수입이 수출의 4배가 넘는 4억달러에 이르는 등 무역규모는 불과 5억2천만 달러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대한뉴스 제805호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가자"
1970년대 이후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수출산업은 획기적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유리파동과 정치적 변혁 등 사회전반에 걸친 어려움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무역 총 규모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기엄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1988년에는, 수출 535억 7천 만 달러, 수입 465억 6천 만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12대 무역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서울올림픽 이후 선진국들의 통상압력과 노사분규 영향으로 수출 신장률이 떨어지고, 국제수지 흑자폭이 줄어드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뛰어난 아이디어 개발로 수출장벽에 관계없이 성과를 얻는 업체들이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1990년에는 수출 실적이 640억 달러를 넘어서 9%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93년 30회 무역의 날 당시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830억 달러에 이르는 수출 실적을 일구게 됩니다.
기술을 앞세운 고가품 중심의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이 업계의 수출증대를 견인한 결과입니다.
기업 스스로 공정한 경쟁질서를 지키고 업종을 전문화 해 세계 제일의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료 점철된 90년대에 이어, 지난 해, 무역 1조 달러를 넘어선 이후 이제는, 도전과 창조·혁신으로 무역환경을 넘어서는 '무역의 날'로 그 의미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KTV 이충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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