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앵커>
내 땅처럼 가꾸고 농사를 지으면 땅의 소유권을 인정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60년이 넘는 기간 척박한 토지를 개간하고 경작하는 노력을 해왔지만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강원도 양구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인데요, 최영은 기자, 대체 어떤 사연인지 소개해주시죠.
◆최영은 기자>
네, 강원도 양구 해안면 일대 무주지에 대한 사연입니다.
'무주지'는 말 그대로 주인이 없는 땅을 말하죠, 우리 민법상 무주지는 20년을 점유하면 시효 취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주민들은 10년은커녕, 60년이 지나도록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해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해왔습니다.
사연의 시작부터 살펴보면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곳은 주인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이 땅 주인들이 이북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한 땅이 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거죠.
◇김현아 앵커>
그럼 주인이 사라진 땅은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었을 텐데, 지금의 농민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최영은 기자>
네, 바로 정부의 정책 때문인데요.
원래 주인의 80%가량이 떠난 이 지역의 관리 차원에서 정부는 1956년과 1972년, 이주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때 무려 1천400명에 가까운 농민들이 이곳으로 이주를 했는데요.
당시 정부는 10년간 경작을 하면 소유권을 인정해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습니다.
화면 보시겠습니다.
녹취> 한기택 / 강원도 양구군
"저는 2세고 저희 조상, 아버지, 어머니 때부터 꿈꿔왔던 걸(토지 소유권) 못 했던 거예요.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주할 때 땅을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약속 지키는 정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김현아 앵커>
10년간 농사를 지으면 소유권을 준다는 약속을 믿고 열심히 경작했는데 세대가 바뀔 때까지 땅을 못 받았다면 이분들 입장에선 참 억울할 텐데요.
◆최영은 기자>
그렇죠. 그런데 정부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여기가 사실상의 무주지는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인은 북한에 존재하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을 정부 마음대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녹취> 정동률 / 국민권익위원회 기업고충민원팀 사무관
"이 토지는 민법상 무주지가 아니고, 주인이 이북에 있는 사실상 무주지였기 때문에 정부는 약속 지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책 이주민은 지속적으로 목숨을 걸고 개간, 경작해 온 노력의 보상 차원에서 정부에 토지 소유권을 부여해 달라는 민원을 지속 제기하게 됐습니다."
◆최영은 기자>
이렇게 민원 대상이 된 땅 규모만 무려 290만 평에 달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인데요.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난 만큼 해결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다행히 민원이 조만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17년부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이 접수된 이후 권익위가 적극적으로 나선 건데요.
권익위는 이 문제가 행정의 사각지대라고 판단하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정부 TF팀을 구성했습니다.
녹취> 정동률 / 국민권익위원회 기업고충민원팀 사무관
"범정부 TF팀은 2018년 2월에 구성되어서 거기에는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조달청, 한국자산관리공사, 국토정보공사 그리고 저희 위원회가 주관해 간사기능을 해서 구성을(했습니다)“
녹취> 전현희 / 국민권익위원장
"국민권익위원회와 정부는 힘을 모아 해안면 주민 여러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는 계기를...“
◇김현아 앵커>
정부 부처가 합심해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써온 건데요.
현재 진행 상황이 궁금한데요.
진전이 있습니까?
◆최영은 기자>
네,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지만 60년 이상 풀리지 않았던 숙제인 만큼, 해결이 쉽지는 않습니다.
일단 정부의 이주 정책과 토지 소유권 부여 등에 대한 관련 자료는 구전으로만 존재할 뿐, 정부 기록관 등 그 어디에도 없었던 건데요.
따라서 근거법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조치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권익위는 국회 지역구 의원을 설득해 의원 입법으로 그나마 속도를 낼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특별조치법이 마련되는 데에만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최영은 기자>
특별조치법에는 해당 토지를 우선 국유화한 뒤 경작자에게 매각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지난 1월 이 내용을 담은 시행령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주민들과 관계 기관의 의견 차이였는데요.
주민들은 그간 소유권 인정을 전제로 척박했던 땅을 비옥하게 일궈왔기 때문에 무상으로 토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해고요, 정부는 반대 의견으로 무상 인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민과 관 사이의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았는데요.
권익위원회는 수차례 현장의 주민을 찾아가 간담회 등을 통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고요.
관계 기관도 일정 부분 양보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도 도맡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현장조정회의도 개최됐는데요.
(영상취재: 한성욱 / 영상편집: 김종석)
조정회의에서는 관계기관이 참석해 토지 매각 문제를 비롯한 관련 사안의 해결 주체를 명확히 하고, 주민들의 안정적인 주거 여건을 마련하게 하는 종합 대책이 논의됐습니다.
◆최영은 기자>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지난 5일, 국유화 절차 과정이 시작됐습니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이후 매각 등을 비롯한 행정적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고요.
잘 마무리된다면 몇 년 안에 토지 소유권이 주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녹취> 한기택 / 강원도 양구군
"감회가 아주 새롭습니다. 70년간의 한을 푸는 거잖아요. 앞으로 잘 되어서 해안면 전체가 잘사는 마을로 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아 앵커>
이곳에 터전을 잡고 반세기 넘게 농사를 지어온 분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일이겠네요.
그런데, 만일 통일이 돼서 북한에 있는 이전 주인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지는 데요.
◆최영은 기자>
네,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헌법상 북한 지역도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북으로 피난한 이전 주인들의 소유권이 법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인데요.
정부는 그래서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특별조치법에 따라 국유화한 땅을 주민들에게 매각한 수익 등을 통해 기금을 조성한다는 건데요.
그렇게 모인 기금을 통해 통일 이후 원래 토지 소유주에게 경제적 보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김현아 앵커>
네, 강원도 양구의 무주지 문제는 근거법이 없어 60년 넘게 풀지 못했던 숙제였죠.
지난 2017년 권익위에 민원이 접수된 이후 조정을 통해 해결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곳 주민들이 하루빨리 자신의 땅에서 농사짓는 날이 오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최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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