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한국 위상
등록일 : 200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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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양경찰청과 러시아 국경수비수간에는 매년마다 열리는 합동 해상훈련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져 있습니다.
이곳은 1907년, 고종 황제 특사였던 이준과 이상설 열사가 만국 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
김미정 기자>
러시아 동쪽 끝 연해주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토크.
전망대에 올라가자 도시의 관문인 졸라또이로그만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은 부동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곳곳에 배치된 군함과 상선이 한때 태평양을 주름잡던 옛 소련의 극동함대 근거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졸라또이로그만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진 시가지.
곳곳에 익숙한 마크들이 눈에 띕니다.
이 곳에서 한국 상품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입니다.
전망대에서 5KM쯤 내려가자 우뚝 솟은 3개의 기념비가 위용을 자랑합니다.
1860년대 초 이곳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한때는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한인들이 터전을 마련한 신한촌은 1905년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집결한 중요한 항일기지가 됩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책에 따라 한인 모두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했던 뼈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날 마침 한국에서 역사 탐방을 온 학생들은 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하며 조상들의 항일 정신을 되새겼습니다.
멀리서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시베리차 횡단 철도의 종착지이자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가까이 왔음을 알립니다.
1907년, 일본 침략의 불법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 황제 특사였던 이준과 이상설 열사가 당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곳입니다.
지금은 대륙 횡단의 전초기지로 물류 수송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은 250여 명.
대부분 유학생과 현지에 진출한 각 기업의 주재원 가족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사회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치안문제입니다
지난 1996년에는 최덕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한 괴한에게 피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치안 문제가 많이 해결된 상태.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총영사관에서는 교민들의 안전을 수시로 확인하며 치안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마다 시행하는 러시아와 한국의 해상 합동훈련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평가입니다.
지난해 10월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10월 동해 해상에서 발생한 러시아 선박 시네고리에호 침몰 사고 당시 러시아 선원 11명을 구조하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어스름이 짙어옵니다.
한반도만큼이나 많은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블라디보스토크.
대륙을 향해 힘차게 발돋움 하는 이 곳에 대한민국이 새롭게 둥지를 트고 있습니다.
이곳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입니다.
한민족의 한과 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열차가 이제는 국경을 넘어한 한반도와 연결될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길 기대해봅니다.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저작권자 ⓒ 영상홍보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곳은 1907년, 고종 황제 특사였던 이준과 이상설 열사가 만국 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
김미정 기자>
러시아 동쪽 끝 연해주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토크.
전망대에 올라가자 도시의 관문인 졸라또이로그만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은 부동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곳곳에 배치된 군함과 상선이 한때 태평양을 주름잡던 옛 소련의 극동함대 근거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졸라또이로그만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진 시가지.
곳곳에 익숙한 마크들이 눈에 띕니다.
이 곳에서 한국 상품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입니다.
전망대에서 5KM쯤 내려가자 우뚝 솟은 3개의 기념비가 위용을 자랑합니다.
1860년대 초 이곳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한때는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한인들이 터전을 마련한 신한촌은 1905년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집결한 중요한 항일기지가 됩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책에 따라 한인 모두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했던 뼈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날 마침 한국에서 역사 탐방을 온 학생들은 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하며 조상들의 항일 정신을 되새겼습니다.
멀리서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시베리차 횡단 철도의 종착지이자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가까이 왔음을 알립니다.
1907년, 일본 침략의 불법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 황제 특사였던 이준과 이상설 열사가 당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곳입니다.
지금은 대륙 횡단의 전초기지로 물류 수송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은 250여 명.
대부분 유학생과 현지에 진출한 각 기업의 주재원 가족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사회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치안문제입니다
지난 1996년에는 최덕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한 괴한에게 피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치안 문제가 많이 해결된 상태.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총영사관에서는 교민들의 안전을 수시로 확인하며 치안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마다 시행하는 러시아와 한국의 해상 합동훈련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평가입니다.
지난해 10월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10월 동해 해상에서 발생한 러시아 선박 시네고리에호 침몰 사고 당시 러시아 선원 11명을 구조하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어스름이 짙어옵니다.
한반도만큼이나 많은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블라디보스토크.
대륙을 향해 힘차게 발돋움 하는 이 곳에 대한민국이 새롭게 둥지를 트고 있습니다.
이곳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입니다.
한민족의 한과 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열차가 이제는 국경을 넘어한 한반도와 연결될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길 기대해봅니다.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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