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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죽음의 비극 - 영동 민간인 희생 사건
등록일 : 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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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원을 포함한 예비검속 대상자 관할 경찰서(지서) 소속 경찰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통보를 받고 출두하였다가 경찰서 유치장, 지서 및 창고 등에 구금되었다가 충북지역 경찰서의 후퇴가 임박하였던 7월 초중순경 충청북도 일대 충북지방경찰국, 각 지역 경찰서, 충북지구 CIC, 헌병대에 의해 집단 사살.
- 충북 전국 자수 전향자 3만 9,986명 중 3,512명 자수 (전국 자수 전향자의 10%)
1949년 12월 13일 국민보도연맹 충북연맹 결성식, 1949년 12월~1950년 1월 국민보도연맹 영동군연맹 결성 추정
- 보도연맹으로 조사 결과 진실규명으로 희생사실이 확인된 희생자는 175명. 추정되는 자는 8명. 이 외 부역혐의 등으로 어서실 등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는 800여명.
- 최현정 조사관 / 전 진실화해위 ‘영동 국민보도연맹 희생 사건’ 담당

아버지 희생, 임두환 (82)
- 좌익활동 혐의로 구속된 후 대전형무소에서 희생
# 일제강점기 용화면사무소 호적계에 근무했던 아버지. 영동군 좌익폭동 후 주모자를 집에 은신시켜줬다는 이유로 1948년 1월 새벽 순경 4명이 찾아옴.
# 당시 집에 벌목을 왔던 송 씨가 자기를 잡으러 온 줄 알고 도망가다가 사살됨.
# 이런 이유로 아버지는 영동경찰서에 연행돼 영동지청에서 6개월 형을 받았음.
# 대전 형무소에 수감된 후 어머니가 면회를 다녀온 적 있지만 1950년 7월 초 희생.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어머니 돌아가신 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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