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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분터골의 한(恨) - 청주 민간인 희생사건
등록일 :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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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배경 및 특성 소개
-청주, 청원 국민보도연맹 결성은 지역 경찰의 주관 하에 이뤄졌고 가입대상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경찰 지시로 마을 구장(이장)이나 마을 책임자가 나서서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경찰은 여러 이유를 들어 보도연맹원들을 불시에 소집, 주로 반공강연 등에 동원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 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청주경찰서 경찰과 헌병대, 청주 CIC 등에 의해 청주경찰서와 각 지서, 청주형무소 등에 소집?구금된 보도연맹원들은 피난을 가야 하니 쌀이나 여비 등 피난 준비를 하고 모이라는 지시에 순순히 응했으며 본인들이 죽음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은 청원군 남일면 분터골과 쌍수리 야산, 낭성면 추정리고개, 강내면 탑연리 야산, 미원면으로 가는 방면 등 청주 청원 일대 여러 곳에서 학살되었으며 그 중 분터골에서만 약 천여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주 민간인희생 유족 오성균(74)
-부친 오병희(26) 희생. 청주경찰서 무도관->남일초등학교->청주교도소->분터골
# 청주시 영운동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은 어울리던 동네청년들과 함께 보도연맹에 가입.
# 공무원이던 큰아버지(부친의 형님) 사택에 땔감을 실어 나른 후 소집에 가기 싫다고 하였으나 큰댁이 국가가 하는 일에는 응해야 한다 설득해 경찰서로 보냈다고 함.
# 경찰서무도관에 며칠 구금돼 있다가 사람이 많았는지 남일초등학교로 구보로 이동, 거기서 다시 청주형무소로 이송 후 다음 날 트럭에 실려 분터골에 가 총살당함
# 청주에서 30여 년 간 택시를 운행해 온 오성균씨는 숱하게 오갔던 길이 당시
아버지가 끌려갔던 길이라는 사실을 진화위 조사가 시작되고서야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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