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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맺힌 모월리의 진실 - 대한청소년 개척단 사건
등록일 :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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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배경 및 특성 소개
- 1961. 5. 16. 군사정변 이후 수립된 군사정권은 ‘부패와 구악의 일소’를 내세웠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반부패 척결’과 ‘사회악 일소’라는 명분 아래 깡패, 불량배, 부정선거 관련자, 부용공분자 등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고자 해당자들의 검거에 착수하여 1961. 말까지 3,000여명의 용공분자와 4,000여명의 폭력배를 체포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건전한 국민정신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여 국민의 자발적인 군정협력을 유도
- 또한 군사정부는 ‘사회명랑화 차원’에서 거리의 성매매여성 및 걸인과 부랑인들을 대대적으로 단속, 늘어만 가는 단속된 인원을 귀향조치, 수용시설에의 수용 등으로만 대처하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부랑인들을 모아서 충남 서산에 대한청소년개척단 사업을 벌이게 됨.
- 우필호 / 전 진실화해위원회 대한청소년 개척단 피해 사건 조사 팀장

피해자 정영철 / 당시 고아 / 현 농민 (80)
-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했고, 혈혈단신 지내면서 부산 광명 극장 앞에서 구두닦이, 까치담배, 신문팔이도 했음. 당시 열다섯 살 정도.
#1961년, 하숙집 한 방에서 친구들 4명 정도와 밤에 자고 있는데 경찰과 군인이 와서 기관총을 겨누면서 깨웠고, 차를 태워서 납치해 감, 맨 처음 부산 영화숙이라는 고아원으로 끌려감, 그 후 전라도 장흥으로 끌려갔고 장흥에서부터 구타를 당함.
# 이후, 서산개척단으로 강제 이송돼 수용생활과 강제 노역했고, 5년 정도 있으면서 폐염전을 맨손으로 개간했고 영양실조 및 구타로 죽은 사람들을 목격함.
# 죽기전에 한이라도 풀려면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사과와 보상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람.

피해자 유재문 / 당시 초등학교 3학년 / 현 목사 (70)
- 6살 때 대구에 살았고 어머니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의붓아버지 눈치가 보여 대구시립희망원이라는 고아원으로 보내짐.
# 학교 끝나고 나오는데 군복 입은 두 사람이 좋은데 데리고 간다고 하면서 서산으로 곧바로 끌려감. 개척단 간부 집에서 심부름, 설거지 등을 했고 강제노역으로 돌나르기, 땅 파고 메우는 일 등을 했고 대기부녀부에 의지하고 있었던 누나가 있었는데 개척단 생활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바늘 한주먹을 삼키고 죽은 모습을 목격, 그 외에도 구타당해 죽은 사람들을 여럿 목격함.
# 간부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화풀이 삼아 번쩍 들어서 바닥에 내동댕이침
# 지금도 후유증으로 심장이 기형, 잠도 세 시간 밖에 못 잠

피해자 임현철 / 당시 초등학교 6학년 / 현 무직 (74세)
- 서산 개척단 안에 집이 있었고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형제와 살았음.
# 61년 11월 14일, 밤 9시정도 개척단 관계자들이 느닷없이 쳐들어와 방도 빼앗기고 간장, 된장, 배추 등을 강탈해 가서 거의 굶다 시피 살았음.
# 부모님은 하루 종일 강제노역에 시달려서 고생을 많이 하셨고, 자신 또한 고통스러웠던 건 돌아다닐 수 없었다는 것, 눈에 보이면 발길로 걷어차이고 모진 구타를 당하기 때문.
# 그 사람들이 키우는 개를 훈련시켜서 가서 물으라고 해서 손도 물렸고, 개를 훈련시킬 때 함석 원반을 던져 물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머리를 맞아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음.

피해자 성재용 / 당시 고아 / 현 농민 (80)
- 한국전쟁 때 피난을 천안으로 왔고 고아원을 전전함.
# 고아원에 있을 때 공문이 왔는데 서산개척단이라는데 가면 집도 주고 농사도 지을 수 있고, 잘살게 끔 해준다고 하여 자진해서 서산개척단으로 옴. 당시 나이 열 아홉 살.
# 하루 종일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몽둥이로 구타를 당함.
#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고 개척단에서 살던 생각을 하면 눈물 밖에 안 나옴.

피해자 정화자 / 당시 미용사 / 현 구멍가게 운영 (79)
- 당시, 미용사 자격증이 있었는데 친구네 미장원에서 일을 하기 위해 목포에서 대전으로옴.
# 친구 하나가 서산개척단에서 일하면 월급을 많이 주니까 가보자고 해서 서산개척단으로 들어옴
# 당시 나이 열 아홉 살, 개척단에서 개간 사업하는데 잔심부름 하고 구호반들 끼니 때 되면 밥도 해주면서 고생을 많이 했음
# 개척단에서 강제 결혼식을 올렸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죽으려고 두 살 짜리 애기를 업고 저수지에 빠진 적도 있음.
#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으나 아들 하나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개척단 출신 남편은 40년간 골수염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남.

진실규명
- 2010년 진실화해위 권고사항
국가는 5?16 군사정변 이후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하여 일부 개척단원들을 강제적으로 수용하여 노역하게 함으로써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하여 진실규명대상자 김귀술 등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

- 대한청소년 개척단 사건이 현대사에서 갖는 역사적 함의 및 기억해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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