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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학살과 탄압 - 경주 민간인 희생사건
등록일 :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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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사건의 배경 및 특성 소개
- 1948년 2.7투쟁, 5.10선거, 대구 6연대사건 등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입산한 빨치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수행된 1949년까지 경주지역 민보단장 이협우를 비롯한 우익세력들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이 좌익으로 몰려 희생당함.
- 1949년 11월 1일 경북도 보도연맹 결성 이후 1950년 2월 8일 경 경주 보도연맹 결성됐고 1950년 7월~8월 사이 경주에서 최소 200명의 보도연맹원 등이 예비검속되어 총살당함.
- 1950년 8월 14일 경주시 강동면 기계천에서 미군폭격에 의해 최소 피난민 35명이 희생.
- 1960년 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 이후 유족회를 결성한 김하종 외 유족회 임원들이 5.16쿠데타 후 반국가행위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살거나 수개월 간 고문을 받음.

민간인희생사건 유족 & 인권침해 피해자 김하종(89)
- 감하종은 경주유족회 회장으로 전쟁 전 민간인희생사건 유족이자 유족회 결성 및 활동으로 <5.16이후 인권침해사건>의 피해자로 진실 규명 된 당사자이기도 함.
# 내남면 민보단장 이협우 일행이 명계리 주민 30명을 좌익으로 몰아 학살하고 김하종의 부친에게 이들의 시체를 처리하게 했다가 장례를 치르려 한 김하종의 부친을 폭행하여 사망케 하였고 아들인 김하종도 죽이려 했으나 이웃의 도움으로 희생을 면함
# 이협우와 민보단은 한국전쟁 전후로 약 200여명을 불법적으로 학살한 것으로 추정.
# 김하종은 1960년 유족회를 결성하고, 이협우를 고발해 사형을 언도 받기도 함.
# 경주유족회는 1961년 5.16쿠데타 이후 반국가단체로 탄압 받았으며 유족회임원들이 경주경찰서로 끌려가 수개월 간 구금 돼 고문을 받음.
# 김하종은 혁명재판소에서 처음엔 무기징역, 최종 7년형을 선고받았고 1년8개월 복역 후 특사로 석방되었으나 그 후에도 오랫동안 요시찰인으로 형사들의 감시를 받았음.
# 진화위 발족 후 진실규명을 신청하며 다시 경주유족회를 맡아 이끌어 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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