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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 희생자 - 납북어부, 조총련 간첩사건
등록일 :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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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사건의 배경 및 특성 소개
- 김양기, 김영일 등을 광주보안대 등으로 불법 연행해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자백을 받아내어 국가기밀 탐지 및 수집, 보고 하는 등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

김양기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72)
- 일본에서 운수회사를 경영하던 큰 숙부 김용신의 초청으로 1974년 12월, 도일하여 1년 3개월간 체류하다가 1982년 상용여권을 발급받아 1984년 8월경까지 6회에 걸쳐 약 1개월 내지 3개월간 일본에 머물다가 귀국 후 1984년 11월 경부터 귀금속류 도매업을 했음.
#이후, 1986년 2월 경, 광주보안대는 김양기를 연행해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재일공작지도원으로 지목된 김모씨에게 포섭되어 여러차례 회합하고 간첩 지령을 받아 국가 기밀을 탐지 및 수집, 보고 하는 등 간첩활동을 하고, 북한 및 조총련을 고무 찬양한 혐의로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죄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 적용됨.
#1996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1991년 5월 가석방 됨. 2009년 4월, 재심개시 결정, 그해 7월 무죄판결.
#아버지 고(故)김용현은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 일본에서 메시로 상업학교 졸업 후 도쿄 철도국에서 근무, 귀국해 경찰, 교사로 근무, 당시 지식인이었던 아버지, 여순사건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른 뒤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 아버지의 죽음은 훗날 김양기씨가 간첩 누명을 받는 원인이 됐고, 소치도의 애기섬 앞바다에서 학살되어 수장.

김희유 / 김양기 씨 아내 / (66)
-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걱정 없이 살다가 느닷없이 남편이 행방불명 되었고, 여수경찰서에 행방불명 신고까지 함.
#남편 옷을 찾아가라고 해서 광주 505 보안대로 갔고, 수사관들이 남편은 간첩이라고 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아내에게도 온갖 협박을 함.
#당시, 아이들이 여섯 살, 네 살 어렸고, 본인은 집안에서 아무것도 못 한 채 쭈그리고 있었고, 본인은 이 사건을 오픈했으나 주위에서도 간첩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여 고통스러웠음.
#아이들이 성장 후, 순천법대 갔고 부모 얘기를 했더니 주위의 시선으로 학업을 포기했고 직업도 포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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