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추진
등록일 : 200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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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현재 급진전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북핵 불용과 평화적 해결이라는 일관성을 갖고 일을 추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고다 기자>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 핵문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상징하는 한반도 핵불능화 논의가 있기까진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이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되며 북핵문제는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 가장 빛났던 때는 지난 해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핵 실험을 강행했을 때입니다.
당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북강경책 주장이 대세를 이뤘을 때에도 정부는 평화 우선 원칙을 굳게 지켰습니다.
이는 BDA 문제로 좌초 위기에 놓인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동북아 평화체제 로드맵을 복구시키기 위해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외교적 체널을 동원했고 마침내 2006년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북핵 2.13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경색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도 우리정부의 노력이 큰 힘이 됐습니다.
2005년 부산 APEC 개최 기간 중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을 한다는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 발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이후 2007년 3월까지 총 8차례의 6자회담과 실무그룹회의를 주도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국제사회는 우리의 입장을 점차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이 쉬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2005년 2월,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 주장 및 6자회담의 무기한 참가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200만 kw의 전력을 3년 이내 북한에 직접 송전하겠다는 중대제안을 북한에 했고, 이는 제3차 6자회담 이후 1년여가 넘게 공전했던 제4차 6자회담 개최에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 위폐문제와 금융제재조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서 양국의 사이는 더욱 악화된 가운데에도, 우리 정부는 쌀, 비료 지원 논의를 유보하는 등 적절한 강경조치를 취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인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도 평화적인 해결이라는 원칙을 놓지 않은 정부의 노력은 결국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굳게 지켜왔던 정부.
우리정부의 이같은 일관성 있는 북핵 문제 해결 원칙은 향후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데 다시 한번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저작권자 ⓒ 영상홍보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고다 기자>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 핵문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상징하는 한반도 핵불능화 논의가 있기까진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이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되며 북핵문제는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 가장 빛났던 때는 지난 해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핵 실험을 강행했을 때입니다.
당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북강경책 주장이 대세를 이뤘을 때에도 정부는 평화 우선 원칙을 굳게 지켰습니다.
이는 BDA 문제로 좌초 위기에 놓인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동북아 평화체제 로드맵을 복구시키기 위해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외교적 체널을 동원했고 마침내 2006년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북핵 2.13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경색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도 우리정부의 노력이 큰 힘이 됐습니다.
2005년 부산 APEC 개최 기간 중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을 한다는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 발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이후 2007년 3월까지 총 8차례의 6자회담과 실무그룹회의를 주도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국제사회는 우리의 입장을 점차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이 쉬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2005년 2월,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 주장 및 6자회담의 무기한 참가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200만 kw의 전력을 3년 이내 북한에 직접 송전하겠다는 중대제안을 북한에 했고, 이는 제3차 6자회담 이후 1년여가 넘게 공전했던 제4차 6자회담 개최에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 위폐문제와 금융제재조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서 양국의 사이는 더욱 악화된 가운데에도, 우리 정부는 쌀, 비료 지원 논의를 유보하는 등 적절한 강경조치를 취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인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도 평화적인 해결이라는 원칙을 놓지 않은 정부의 노력은 결국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굳게 지켜왔던 정부.
우리정부의 이같은 일관성 있는 북핵 문제 해결 원칙은 향후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데 다시 한번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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