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사건의 배경 및 특성 소개
-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22일 오후 9시36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2가 당시, 미 문화원 정문 현관 앞에 놓인 가방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고교생 1명이 숨지고, 행인 경찰 등 4명이 다친 사건이다.
- 당시, 공안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에서 배후 조종한 소행이라고 발표했으나 이 사건을 빌미로 당시 조직화 되고 있던 전두환 정권의 반정부 세력과 학생운동권 세력을 초토화 하려고 하는 공안 작전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손호만 / 대구미 문화원 폭파사건 인권침해 피해자 (64)
- 경북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위를 주동해서 78년 11월경까지 수배 생활을 했고, 1980년 4월 경, 복학조치 되어 시위를 계속 하게 되면서 포고령 위반으로 재판을 받으려고 하는 직전에 소유예로 풀림과 동시에 군대 강제징집 됨.
#이후, 1983년 사건이 있기 전날 학생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의 자취방에 가다가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던 형사들에 의해 불법 연행됨.
#대구 북부경찰서 대공과로 끌려간 뒤, 다시 안가로 끌려가 협박과 구타를 당했고, 다시 원대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벌겨 벗긴 채로 2주간 협박과 구타 및 고문 등으로 인권유린과 허위자백을 강요 받음.
안상학 / 대구미 문화원 폭파사건 인권침해 피해자 (62)
-사건당시, 경북대학교 3학년 이었고, 학내 시위가 몇 번 있었음. 1년 정도 학교 다니면서 야학선생님을 했고, 본인은 스터디그룹 중 하나에 속해 있으면서 야학교사와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고 광주 학살 비디오를 보면서 시위가 있을 때 마다 참가를 했음.
# 학생시위가 있을 때면 시계탑이나 꽃시계 앞에서 했고, 인문대에 언덕에 있는 물탱크 위에서도 시위가 있었음.
#당시 경북대학교, 계명대학교 등과 시위 주동자가 될만한 친구들의 모임을 일주일에 한번씩 가지면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시위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추석 며칠 전에 형사 세 사람이 자취방으로 찾아와서 불법연행해 조사를 받음.
신창일 / 대구미 문화원 폭파사건 인권침해 피해자 (63)
-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이 터지고 전두환의 직권 음모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투쟁에 나섰고, 군사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출소 후, 제적됨.
#1980년 12월, 출소 후 학내에서 학생운동 하는 선배들의 권유로 가톨릭근로자 생활야 학을 맡게 되었고, 강학의 기초적 사회의식을 위한 학습 및 사회과학 학습을 담당함.
#1983년 9월22일, 사건이 터졌고 공교롭게 경북대학교 학생운동 선배들과 회합이 있었고, 학생운동 전력이 있거나 학생운동 활동가의 혐의를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무차별 연행함.
권형민 / 대구미 문화원 폭파사건 인권침해 피해자 (68)
-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 1980년 9월경 다운야학을 시작을 시작, 1982년도 야학교사들 4명이 대구 경북대학교 물탱크에서 민주화선언 연일시위를 한 이유로 야학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주로 가톨릭 노동자회쪽에 있던 사람들에게 야학을 못하게 해서 결국 문을 닫았 고 바로, 1983년 9월에 사건이 터짐.
#당시, 야학교사 한 명이 먼저 연행, 3일 뒤 서부경찰서 정보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음.
이상술 / 대구미 문화원 폭파사건 인권침해 피해자 (66)
- 80년 5월 서울의 봄 때 대구 신암동에서 학생운동하고 있었고 그때 경북대학교에서 제적당해서 쫓겨났고, 먹고 살기 위해 함종호와 함께 전자오락실을 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터지면서 도망생활을 하다가 잡혀 54단으로 안가고 바로 5관구로 끌려감.
#처음 끌려간 곳은 동부경찰서, 이후, 원대동 대공분실로 끌려갔고, 학생운동 쪽으로 접근하면서 조사를 받음.
#본인의 경우 수십번의 조사를 받았고, 당시 수사관들은 도표를 그려 누구는 화약을 제조하고, 누구는 돈을 대고, 누구는 지시하고 하는 등으로 조사를 했음.
진실규명
- 2010년 진실화해위 권고사항
국가는 경찰이 행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에 대해 피해자와 그 가족 등에게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재심 등의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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