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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과 억울한 죽음 - 순천 민간인 희생 사건
등록일 :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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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암(80) / 부친과 삼촌이 희생된 순천 시내 금곡동 유족
- 김귀암씨의 부친 故김창길과 삼촌인 故김동주는 1948년 11월 29일 반군 가담자를 색출하던 순천 경찰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 김동주는 반군을 도운 혐의로 경찰에 쫓기다가 주조장에 근무하던 형 김창길을 찾아가 숨겨 달라하여 형인 김창길이 주조장 한쪽 방에 숨겨주었는데 이를 주조장 다른 직원이 경찰에게 고발해 결국 형과 동생 둘 다 경찰에 끌려갔다.
# 아버지 김창길과 삼촌 김동주는 순천경찰서에 구금되었고 가족의 면회는 금지되었다.
# 아는 경찰을 통해 추위라도 피할 수 있게 스웨터를 넣어달라 부탁하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일찍 어머니와 누나가 다시 경찰서로 가보니, 아버지 김창길은 전날 넣어준 스웨터를 입고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으며 삼촌 김동주는 보이지 않았다.

조선자(74) / 순천 경찰에 의해 부친을 잃은 상사면 유족
- 故조영두(24)는 상사면 서정리 사람으로 마을에 들어온 진압군들에 의해 소집되었다가 손가락질을 당해 상사지서로 끌려간 뒤 순천경찰서로 이송하려는 중에 경찰에 의해 구타를 당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 아버지와 함께 상사지서로 끌려갔다가 풀려난 친구분이 직접 목격하고 들려준 이야기로 아버지는 당시 경찰들에게 나는 죄가 없으니 풀어달라고 항변을 하였고 이를 저지하고자 하던 경찰이 총머리로 아버지 머리를 내려쳐 사망했다고 한다.

최성열(74) / 진압군에게 부친을 잃은 상사면 유족
- 최성열씨의 아버지 故최맹조(38)씨는 상사면 봉래리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으로 1949년 4월 10일 밤 야경을 서던 중 마을로 들어오던 진압군들이 입산자 연락병으로 오인하여 구타를 당했고 이로 인해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 야경을 서던 위치는 동네 우물가로 최성열씨 집 인근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당일 밤 집 밖에서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소리를 듣고 잠시 후 나가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어 집으로 모셔왔다고 한다.
# 아버지는 진압군에게 맞은 상황을 겨우 겨우 말씀해주시다가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권종국(74), 고화석(76) / 양지멧골 집단희생지 유족들
- 故권성옥(29)는 월등면 계월리 사람으로 1948년 11월 25일 마을에 들어온 반군들에 의해 강제로 동네 청년들과 함께 월등면사무소 경계를 섰는데 동네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여 반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희생을 당했다.
# 황전면 죽청리 사람인 故고재욱(26)은 1949년 9월 25일 마을에서 좌익활동을 하던 사람이 동의도 없이 인민위원회 청년단장으로 명단에 올렸고 그 명부를 발견한 15연대 군인에게 명부를 넘겨받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 권성옥, 고재욱 두 사람의 희생 시기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끌려가 총살당한 곳은 월등면과 황전면 경계에 있는 양지멧골이라는 골짜기다. 이곳은 월등면과 황전면 주민 수십여 명이 군경에 의해 총살당한 집단희생지다.

장홍석(76) / 낙안 신전마을 집단희생 사건 유족
- 故조성림(46)은 낙안면 신전마을 사람으로 9남매의 엄마였다. 당시 산사람들 연락병 노릇을 하던 14세 소년이 경찰과 교전 중 허벅지 부상을 입자 산사람들이 마을에 소년의 치료를 맡겼고 마을 사람들은 아들 같고 동생 같은 소년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 나은 소년이 친척을 만나러 떠나던 길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 사연을 알게 된 15연대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소년을 도운 마을 사람 22명을 찾아내 죽였으며 조성림도 이 때 함께 희생되었다.

김태복 (77) / 해룡면 도롱리 집단희생 사건 유족
- 김태복씨는 집안에 좌익활동가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작은아버지와 장인어른을 잃었다. 작은아버지 故김규환(22)은 49년 1월에, 장인 故최정환(29)은 48년 12월 하순에 돌아가셨다.
# 김태복씨에게는 집안 할아버지벌 되는 분이 인민위원회 해룡면 책임자였고, 작은집 당숙도 좌익활동가였다고 한다. 동네 교인들이 어느 좌익들에 의해 희생된 일이 있었는데 김태복씨 집안사람들도 희생자 가족들에게 미움을 샀다.
# 여순사건이 일어난 겨울, 경찰들이 마을에 들어와 청년들을 샛터라는 도로가에 소집시킨 뒤 작은아버지 포함 청년 7명을 색출, 해룡지서를 거처 순천경찰서에 구금했다가 생목동 공동묘지로 끌고가 총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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