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인(80) /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故이성우의 아들
-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고흥 두원면에서는 이백인의 부친 故이성우(28세)를 비롯해 8명의 주민이 경찰에 연행된다. 그리고 7월 20일 새벽, 그들이 끌려가 총살된 점안면 팔영산 당고개는 고흥지역 보도연맹 43명의 집단희생지임이 밝혀졌다.
#사건 당시 8세였던 이백인은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옷을 다림질하고 있는데 경찰 두 명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 이성우를 연행해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 아버지는 고흥경찰서 유치장에 일주일 남짓 구금돼 있었고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면회를 다녔는데 유치장에 약 100명 정도가 갇혀 있었다 한다.
박형상(79) / 여순사건 학곡리 희생자 故박경래의 아들
- 여순가담자로 체포되어 반송저수지에서 사살된 박경래(29세)는 두원면 학곡리 밀양박씨 규정공파조 사당인 숭양사를 지켜온 종손으로 지금은 그의 아들이 대를 잇고 있다.
구학문 공부가 깊었던 박경래는 여순항쟁 이후 툭하면 경찰이 찾아와 취조와 구타를 했으며 49년 4월 23일 아침 집에서 연행된 후 그날 점심 무렵 반송저수지 인근에서 권총에 사살되었다.
# 아들 박형상은 아버지가 서당에 있다가 경찰이 불러내 서당 앞 마당에서 무언가 강요받으며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로부터 약 두어달 후 아버지가 경찰에 사살되었다.
김청희(77) / 여순사건 길두다리 희생자 故김성규의 아들
- 포두면 길두리 故김성규(23)는 농사만 짓던 사람으로 양자로 간 형님 대신 장남 노릇을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한다. 48년 11월 30일 마을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동네청년들을 무조건 끌고 갔는데 바로 그날 양수암, 윤상환 두 청년과 함께 길두다리 밑에서 총살되었다.
# 아들 김청희는 부친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으며 청년회 활동을 하셨는지 마을?년들과 찍은 사진 한장과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통해 아버지 모습을 유추해 보는 정도다.
곽성암(76) / 여순사건 봉임리 뒷산 희생자 故곽종숙의 아들
- 포두면 전동마을 故곽종숙(29)은 여순사건에 가담했으며 마을 청년회 활동을 하며 ‘수탈 지주 재산 반환하라’등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여순 진압 후 계속 피신을 다녔는데 집안에서 자수를 권하여 집에 왔다가 잡혀 봉임리 뒷산에서 주민 8명과 함께 총살되었다.
# 곽종숙의 아들 곽성암은 부친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부친의 희생사연은 대부분 마을 어른들께 전해들은 이야기다.
김형윤(76) / 여순사건 관덕리 희생자 故김종휘의 조카
- 관덕리 김녕김씨 집성촌에서는 故김종휘(24)를 비롯해 7~8명의 젊은이들이 좌익 혐의자로 색출되어 희생되었다. 김종휘는 무학에 농사만 짓던 사람이나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총살한다는 흉흉한 소문에 도망을 다니던 중 집에 잠시 들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팔영산 어느 골짜기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김옥수(82) / 장담마을전봇대절단사건희생자 故김명수의동생
- 당시 고흥관내에는 벌교-고흥읍-녹동면 각 지서를 연결하는 목조 전신주가 있었는데 이를 반군이 절단하는 일이 발생해 주요지점마다 각 마을청년들이 순찰을 돌았다.
1949년 5월 3일경 밤 과역면과 남양면 경계지점에서 전신주 10개가 절단된 사건이 발생해 장담마을 청년들이 이를 남양지서에 신고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과역지서 경찰들이 장담마을을 포위해 공포탄을 쏘며 주민들을 집합시킨 후 故김명수(22) 등 관련자 12명을 연행, 절단사건 가담여부를 취조하고 고문했다. 이들은 고흥경찰서로 이송되어 다시 고문을 받고 4명은 석방되고 김명수 등은 점안면 운암산에서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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