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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과 백운산의 원혼들 - 광양 민간인 희생 사건
등록일 : 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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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태(76) / 광양읍 희생자 故허장오, 故허옥선의 조카
- 故허장오(31)와 故허옥선(24)은 4형제 중 둘째와 막내였다. 두 사람은 1948년 11월 3일 광양읍 세풍리에 들어온 군경 20여명이 반군을 도운 혐의자 색출 시 이웃에게 지목되어 광양읍으로 들어오는 무선재라는 고개 위 소나무 앞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살되었다.
# 희생자들의 조카인 허정태에 따르면 부친과 부친 형제들이 집안도 잘 살고 모두 똑똑하고 말도 잘해서 마을에 따르는 이가 많았는데 그만큼 시샘하는 이들도 많아서 작은아버지들을 지목한 이도 시샘하던 이들 중 한 명이었고 그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한다.
# 둘째 작은아버지는 주물공장 공장장이었고 막내 작은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막내 작은아버지의 제자 신한주(88세)가 당시 총살현장까지 따라가 상황을 목격하였다.

배주희(77) / 광양읍 희생자 故배소열의 아들
- 이발사 일을 하며 광양, 구례로 출장 이발을 다녔던 故배소열(38)은 허정태의 작은아버지들과 함께 지목되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살되었다.
# 희생자의 아들 배주희는 어머니와 큰누나로부터 아버지를 지목한 이가 일제강점기부터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장00라고 전해들었으며 아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그 사람을 원망하며 서럽게 우시곤 했다고 한다.
# 당시 마을에 들어 온 토벌대는 14연대 군인 한명을 포승줄에 묶어 압송하던 중 가담자를 색출하기 위해 마을에 온 것으로 보이며 아버지가 사살된 장소는 허정태의 막내삼촌의 제자였던 신한주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다.

박채규(76) / 옥룡면 희생자 故박노성의 아들
- 백운산과 바로 이어지는 옥룡면 마을들은 빨치산들이 자주 내려와 피해를 입혔고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피해가 컸다. 49년 9월 16일 백운산 빨치산들의 광양읍 습격사건이 일어나자 군경은 옥룡면에 들어와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색출했다. 죽천리 이장이었던 故박노성(30)은 셋째형인 故박노관(39)과 함께 좌익에 협조했다고 지목되어 9월 20일 용곡리 완금산 금광굴 인근에서 경찰과 토벌대에게 사살되었으며 제일 큰형 故박노준(43)은 두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다 군경에게 끌려가 9월 30일 가모개재에서 주민 10여 명과 함께 총살 되었다.
# 옥룡면과 봉강면 경계에 있는 가모개재는 9월 23일~30일 사이 4차례에 걸쳐 옥룡면 봉강면 주민 30여 명이 총살된 집단희생지다.

이현모(82)/진상면 희생자 故이수경의 아들
- 진상면은 백운산으로 들어가는 주요 입산통로로 산악지역에 있던 마을들에서 군경의 토벌과정 중 민간인 피해가 집중됐다. 특히 어치리의 경우 백운산에 깊숙이 위치해 빨치산들이 주요 배후마을로 활용했고 이로 인해 군경의 토벌 작전이 잦았다. 1949년 9월 29일 경 군인들이 어치리 느재마을에 들어와 반란군에게 밥을 해주거나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주민 9명을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사살했는데 故이수경(46)도 이 때 희생되었다.
#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고 주민들이 함께 시신을 수습해 근처 산에 놨다가 훗날 좋은 자리를 잡아 묘를 썼다.

이정연(82) / 빨치산에 의한 희생자 故김덕업의 손자
- 故김덕업(50)의 가족은 아들이 옥룡면 부면장이고 사위가 옥령지서장이었기에 좌익들에게 소위 반동분자의 집으로 불려 낮에만 집에서 지내고 밤에는 피신을 가 생활하던 중 1950년 음력 5월 5일 경 마을에 내려온 입산자들에게 사살되었다.
# 사건 당시 열세 살이던 이정연의 말에 따르면 백운산 인근지역인 옥룡면에는 밤이면 빨치산들이 내려와 민가 세간살이를 약탈해 가곤 했다. 가족들이 밤이면 남의 집으로 피신을 가 지냈는데 그날은 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만 계시다가 변을 당했다.

좌우 양측에 시달린 광양 백운산 희생자정령비
- 백운산 중턱 옥룡면 동곡리에는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연병장 터가 남아 있고 그 한쪽에 희생자정령비가 하나 서 있다. 백운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박00이 훗날,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좌익에 의해서든 군경에 의해서든 이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이들의 넋을 기리는 뜻에서 사비로 세운 것이라 한다.
# 박채규씨를 비롯한 광양 유족들은 좌우에 관계없이 희생된 모든 이들의 죽음을 함께 애도할 수 있을 때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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