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및 사건 개요>
1946년 10월 대구에서 벌어진 기아시위로 해방 직후 기근과 역병에 시달리던 대구 시민들이 일으킨 사건으로 이어 73개 시군으로 번져나간 역사적 의의가 강한 사건이다. 미곡자유화 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쌀값이 30배로 솟는 등 당시의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을 제지하기 위한 ‘미곡수집령’이라는 정책을 통해 쌀의 강제 수집이 이어졌고 이 공출로 인해 빈곤이 더욱 극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청송지역에서는 무려 200명이 집단 아사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이어 콜레라의 창궐로 인하여 대구 경북 지역에서만 2천 5백여 명의 환자들이 발생하고 1,7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5월에 콜레라가 발생하고 6월엔 수해라는 악재까지 겹친 상황에서 콜레라의 전염을 막기 위한 명분 아래 대구가 봉쇄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의 출입은 물론 식량과 물자 등의 보급로 또한 차단되면서 대부분 기아 상태가 되었고 청송 등 북부 산간지역에는 아사자가 속출했다. 당시 경북 지역은 하곡 수집이 상당히 심하게 시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국민들이 ‘기민시위’를 일으켰으며 식량의 배급을 요구하며 벌어진 사건에 조선남로당(조선공산당) 내 강경세력이 시위에 참가함으로 ‘폭동적 상황’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 다수가 좌익세력이란 비난을 받았고, 이로 인해 희생자 유족들은 반세기 이상 고통과 피해사실을 숨기며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다.
오랜 시간 잊혀졌던 이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세상에 알려졌으며 2010년 3월 진실화해위원회 1기에서 진실규명결정이 나면서 진상이 밝혀지게 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 60여명 외에도 실제 희생규모는 몇 배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비무장 민간인이 법적 절차 없이 임의적으로 살해되거나 상해를 입고 인권침해를 당하게 된 일에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며, 희생현장 주변에는 안내판 등을 설치하여 사건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 및 유해발굴과 유해안치장소 설치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가족관계등록부 등 희생자와 관련된 공적 기록에 사망날짜, 사망장소 및 사망이유가 사실과 다르게 기재되어있는 이들의 유족이 정정을 원할 경우 별도의 법적 절차를 통해 관련사실에 대한 정정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하였다.
<MZ세대와의 대화>
해방된 조국의 희망찬 미래를 기리던 국민들에게 남은 것은 일제의 긴 침략과 수탈로 인한 빈곤뿐이었다. 그러한 대한민국의 대구에서 1946년 10월 1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구부청 앞에 모여든 시민들의 수는 무려 천여 명. 당시 실패한 미곡 자유화 조치와 미곡 수집령으로 인하여 시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되며 청송 및 산간지역에서는 다수의 집단 아사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어진 5월의 콜레라와 6월 수해 재난으로 인하여 사지로 내몰린 대구 시민들이 살기 위해 ‘기아시위’를 일으켰으며 대구 부청 앞에 모였던 것이다.
단순한 시위로 시작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분위기가 격양되며 사건이 폭동의 형태를 띄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소강상태가 되는 줄 알았던 시위에 조선공산당이 개입하게 되면서 이 10월 사건은 좌익 폭동으로 치부되어버린다.
당시 어려웠던 대구의 상황을 대구 10월 사건 유족 이용수 씨의 인터뷰로 시작하며 10월 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회장 채영희 씨, 10월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한 유족 박종경 씨, 한경화 씨와 함께 74년 만에 세워진 10월 사건 위령탑 현장을 방문하며 그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본다.
<클로징>
반세기 넘도록 ‘폭동, 사태’ 등의 이름이 붙은 채 부정적으로 다뤄졌던 10월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아보고, 희생자 유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으며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유족들의 완전한 명예회복이란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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