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등록일 : 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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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 영령의 뜻을 기리고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뜻 깊은 시간이죠.
안보와 국익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텐데요, 그 중에서도 국가정보원이 안중근 의사의 우국충정을 따라 배우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기획특집, 오늘은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충정을 함께 되새겨 보겠습니다.
지난 6월 5일, 국립 현충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영혼들 앞에서 모든 이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영령들의 뜻을 기렸다.
그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래서 자신의 목숨마저 버릴 수 있었던 용기와 신념.
국가의 안위를 항상 걱정하고 애태웠던 애국지사들의 절절한 조국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 속 깊이 다가온다.
1909년 3월, 안중근은 11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동맹을 맺고 조국의 독립회복과 동양평화유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중국 만주 하얼빈 역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31세의 젊은 나이였던 안중근이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쏜 것이다.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오직 나라사랑과 구국의 일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과감히 버린 애국지사, 안중근.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뜻의 이 여덟 글자에는 그의 신념과 애국정신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일본 재판관에게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목을 조목조목 들어 꾸짖는 비범한 대장부였다.
또한,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절절한 조국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26년 3월 26일.
그는 여순 감옥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32년의 짧은 인생.
그러나 그가 우리나라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의미가 깊다.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투쟁 외에 학교를 설립해 구국영재 양성에 힘을 쏟았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애국계몽가로서도 활발한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작품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100년 전이기는 하지만, 한·중·일 세 나라의 주권을 서로 인정하고, 평화체제 속에서 공동번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 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체 구축 논의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충절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안보와 국익의 최전선 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안 의사의 숭고한 애국심과 무한한 헌신성, 앞선 정세 인식과 안보관 등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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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 영령의 뜻을 기리고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뜻 깊은 시간이죠.
안보와 국익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텐데요, 그 중에서도 국가정보원이 안중근 의사의 우국충정을 따라 배우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기획특집, 오늘은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충정을 함께 되새겨 보겠습니다.
지난 6월 5일, 국립 현충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영혼들 앞에서 모든 이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영령들의 뜻을 기렸다.
그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래서 자신의 목숨마저 버릴 수 있었던 용기와 신념.
국가의 안위를 항상 걱정하고 애태웠던 애국지사들의 절절한 조국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 속 깊이 다가온다.
1909년 3월, 안중근은 11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동맹을 맺고 조국의 독립회복과 동양평화유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중국 만주 하얼빈 역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31세의 젊은 나이였던 안중근이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쏜 것이다.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오직 나라사랑과 구국의 일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과감히 버린 애국지사, 안중근.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뜻의 이 여덟 글자에는 그의 신념과 애국정신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일본 재판관에게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목을 조목조목 들어 꾸짖는 비범한 대장부였다.
또한,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절절한 조국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26년 3월 26일.
그는 여순 감옥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32년의 짧은 인생.
그러나 그가 우리나라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의미가 깊다.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투쟁 외에 학교를 설립해 구국영재 양성에 힘을 쏟았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애국계몽가로서도 활발한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작품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100년 전이기는 하지만, 한·중·일 세 나라의 주권을 서로 인정하고, 평화체제 속에서 공동번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 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체 구축 논의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충절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안보와 국익의 최전선 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안 의사의 숭고한 애국심과 무한한 헌신성, 앞선 정세 인식과 안보관 등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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