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록일 : 2023.07.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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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53년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놓은 전쟁이 잠시 멈췄다. 폐허가 된 한반도, 희망이라는 게 없어 보이던 작은 나라.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1962년부터 1981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이 근대화 정책으로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과 수출의 역사를 만나본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박정희 정부의 근대화 정책 일환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 성장 정책은 수출을 늘리는 것이었다.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원대한 꿈. 정부는 국민들에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알기 쉽도록 경제개발 모형을 전시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모형 전시 - 대한뉴스 (1962년)
*1962년~1966년 제1차
제1차 계획의 기본 목표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 전력, 석탄 등 에너지원과 철도, 도로, 항만 등을 포함하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정유, 비료, 종합제철, 기계제작 등 40여 개에 이르는 육성 대상 사업을 선정하고, 국가 산업의 기초가 되는 기간산업을 늘리는데 힘썼다.
강철생산 - 대한뉴스 (1962년)
한일나일론 안양공장 준공식 거행 - 리버티뉴스 574호 (1964년)
특히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한 경공업이 발전했다. 한국인의 야무진 손기술이 담긴 가발, 의류, 신발 등이 수출의 주력 품목이 되었다.
수출되는 우산 - 리버티뉴스 628호 (1965년)
*1967년~1971년 제2차
‘1980년대 초에 완전한 자립경제체제를 확립한다’ 이 목표를 위해 2차 계획은 경제성장은 물론 생활수준 향상까지 함께 고려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이때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10%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는 건설한다 - 대한뉴스 제746호 (1969년)
집념의 승리 (포항종합제철소 준공 및 발전) - 문화영화 (1968년)
*1972년~1976년 제3차
제3차 계획에서는 ‘안정’과 ‘균형’을 강조했다. 또한 수출의 획기적인 증대를 위해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등과 같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다. 1973년 일어난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우린 값진 땀방울을 함께 흘려가며 꾸준한 성장을 이어갔다.
대형 타이어 수출 - 이런일 저런일 (1973년)
석유스토브 일본, 이란 등에 수출 - 이런일 저런일 (1973년)
고려원양 백두산 2호 처녀 출항, 태평양으로 출어 - 이런일 저런일 (1973년)
수출 100억불을 향하여 - 대한뉴스 제989호 (1974년)
*1977년~1981년 제4차
세월의 거친 파고를 넘어 놀라운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 1977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다. 변변한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도약은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수출 중심 전략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여기에 오랜 시간 묵묵히 땀 흘려 일한 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종합전시장 개장 - 대한뉴스 제1246호 (1979년)
자동차 수출 - 대한뉴스 제1543호 (1985년)
멈추지 않는 거센 도전, 이런 성장의 결과는 눈부시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이제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있다. 1961년부터 30년 동안 연평균 10% 가까운 고성장을 했던 우리 경제는 2천년대 들어 4%대로 성장세가 떨어졌고, 올해는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극복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우리 경제.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 성장 속에 담긴 사람들의 노력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53년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놓은 전쟁이 잠시 멈췄다. 폐허가 된 한반도, 희망이라는 게 없어 보이던 작은 나라.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1962년부터 1981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이 근대화 정책으로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과 수출의 역사를 만나본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박정희 정부의 근대화 정책 일환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 성장 정책은 수출을 늘리는 것이었다.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원대한 꿈. 정부는 국민들에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알기 쉽도록 경제개발 모형을 전시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모형 전시 - 대한뉴스 (1962년)
*1962년~1966년 제1차
제1차 계획의 기본 목표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 전력, 석탄 등 에너지원과 철도, 도로, 항만 등을 포함하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정유, 비료, 종합제철, 기계제작 등 40여 개에 이르는 육성 대상 사업을 선정하고, 국가 산업의 기초가 되는 기간산업을 늘리는데 힘썼다.
강철생산 - 대한뉴스 (1962년)
한일나일론 안양공장 준공식 거행 - 리버티뉴스 574호 (1964년)
특히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한 경공업이 발전했다. 한국인의 야무진 손기술이 담긴 가발, 의류, 신발 등이 수출의 주력 품목이 되었다.
수출되는 우산 - 리버티뉴스 628호 (1965년)
*1967년~1971년 제2차
‘1980년대 초에 완전한 자립경제체제를 확립한다’ 이 목표를 위해 2차 계획은 경제성장은 물론 생활수준 향상까지 함께 고려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이때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10%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는 건설한다 - 대한뉴스 제746호 (1969년)
집념의 승리 (포항종합제철소 준공 및 발전) - 문화영화 (1968년)
*1972년~1976년 제3차
제3차 계획에서는 ‘안정’과 ‘균형’을 강조했다. 또한 수출의 획기적인 증대를 위해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등과 같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다. 1973년 일어난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우린 값진 땀방울을 함께 흘려가며 꾸준한 성장을 이어갔다.
대형 타이어 수출 - 이런일 저런일 (1973년)
석유스토브 일본, 이란 등에 수출 - 이런일 저런일 (1973년)
고려원양 백두산 2호 처녀 출항, 태평양으로 출어 - 이런일 저런일 (1973년)
수출 100억불을 향하여 - 대한뉴스 제989호 (1974년)
*1977년~1981년 제4차
세월의 거친 파고를 넘어 놀라운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 1977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다. 변변한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도약은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수출 중심 전략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여기에 오랜 시간 묵묵히 땀 흘려 일한 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종합전시장 개장 - 대한뉴스 제1246호 (1979년)
자동차 수출 - 대한뉴스 제1543호 (1985년)
멈추지 않는 거센 도전, 이런 성장의 결과는 눈부시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이제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있다. 1961년부터 30년 동안 연평균 10% 가까운 고성장을 했던 우리 경제는 2천년대 들어 4%대로 성장세가 떨어졌고, 올해는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극복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우리 경제.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 성장 속에 담긴 사람들의 노력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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