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옛 노래
등록일 : 2023.10.3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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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100가지, 추억의 문화영화 (80회)
흘러간 옛 노래
*황성옛터
신파극단 배우 겸 가수 이애리수가 일제강점기에 불렀던 노래 <황성옛터>. 당시 순회극단이 개성 공연을 하면서 작곡된 이 곡은 민족 노래로 불렸다. 잡초만이 무성한 옛 성터에는 고요한 달빛만이 푸르게 비치고... 찬란했으나 그 흔적조차 사라진 고려의 성터 만월대의 쓸쓸한 감회... 일제의 탄압 아래 우리 민족의 시름을 실어 널리 불렸던 <황성옛터>는 조선총독부가 금지곡으로 정했으나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널리 퍼져 나갔다.
<남인수>
일제강점기 후기인 1941년 <황성옛터>를 다시 불러 널리 알렸으며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거라 삼팔선>, <추억의 소야곡>으로 한국전쟁 전후를 풍미한 대중가요 가수
흘러간 옛 노래 <황성옛터>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꾀꼬리의 여왕 황금심
1936년 열다섯 나이에 <왜 못 오시나요>와 <지는 석양 어이 하리오>로 데뷔한 황금심. 그 후 <알뜰한 당신>과 <한양은 천 리 원정>이 큰 히트를 하면서 그녀의 시대가 시작된다. 1960년대까지 활동하며 꾀꼬리의 여왕이라 불렸던 황금심. 그녀의 구성진 민요조 창법은 당시의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와 만나 결혼했는데 고복수가 북한군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시련의 암흑기를 이겨내고 1952년 제주도를 소재로 한 노래 <삼다도 소식>으로 다시 인기를 누렸다.
<황금심>
일제강점기 15살에 데뷔해 민요조의 구성진 창법을 구사해 <꾀꼬리의 여왕>이라 불린 가수로 광복 전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대표곡으로는 <알뜰한 당신>, <삼다도 소식> 등이 있음
꾀꼬리의 여왕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고복수의 타향살이
일제강점기 최고의 대중가요로 꼽힐 만큼 크게 유행한 <타향살이>를 부른 고복수. 그는 당시 최고의 인기 여가수 황금심과 결혼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가사의 <짝사랑>이 또다시 인기를 누리면서 신민요의 터를 닦은 가수 이은파와의 민요 듀엣곡 <풍년송> 등으로 광복을 전후해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은퇴 후 굴곡을 겪으며 불운의 가수로 남았다.
<타향살이>
가수 고복수의 대명사와 같은 곡으로 기교 없는 순수한 창법과 고향을 그리는 가사가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전후로 고국을 떠난 동포들에게 감흥을 주면서 망향가처럼 불림
고복수의 <타향살이>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1935년 <목포의 눈물>이 크게 히트하여 유명해진 가수 이난영은 그 후에도 <해조곡>, <울어라 문풍지> <목포는 항구다> 등으로 사랑받았다. 그녀는 당시 대중가요의 천재라 불린 작곡가 겸 가수 김해송과 결혼했지만 그가 납북되면서 시련을 겪었으며 자녀들을 유명 가수로 키워낸다. 후에 이난영, 김해송의 자녀들은 <김시스터즈>라는 보컬 팀으로 활동했으며 1966년에는 목포 유달산에 이난영을 기리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졌다.
<목포의 눈물>
1935년에 발표된 민요풍 가락의 구슬픈 곡조로 <남행열차> 와 함께 목포를 상징하는 노래로 통하며 매년 목포에서 <이난영 가요제>가 열릴 만큼 유명한 추억의 가수, 이난영의 대표곡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추억의 가수 진방남, 백난아
가수로 활동할 때는 진방남 작곡가로 일할 때는 반야월 그는 1938년 데뷔 이후 <불효자는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등으로 히트했다. <불효자는 웁니다>를 녹음하기 전 그는 모친상을 지내 통곡하듯 노래했으며 반야월이라는 이름으로 작곡한 노래는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 등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가수 백난아는 <금박댕기>, <낭랑 18세>로 인기를 누렸다.
<진방남(반야월)>
일제강점기 대중가요 가수이자 작곡가로 <불효자로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등을 불렀으며, 반야월이라는 작사 겸 작곡가로 활동할 당시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의 명곡을 남기며 당대 가수 이난영, 작곡가 박시춘과 함께 3대 보물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 있는 음악인
진방남(반야월)의 <마상일기>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백난아>
14세 때인 1940년 신문사 콩쿠르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며 데뷔해 <땅 버들 물 버들> <아리랑 낭랑>, <낭랑 18세>, <금박댕기>로 사랑받은 추억의 국민 가수
백난아의 <아리랑 낭랑>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전후한 그 시절.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을 흘러간 옛 노래는... 암울했던 그 시절... 민족의 눈물과 희망을 함께한 벗이었다.
흘러간 옛 노래
*황성옛터
신파극단 배우 겸 가수 이애리수가 일제강점기에 불렀던 노래 <황성옛터>. 당시 순회극단이 개성 공연을 하면서 작곡된 이 곡은 민족 노래로 불렸다. 잡초만이 무성한 옛 성터에는 고요한 달빛만이 푸르게 비치고... 찬란했으나 그 흔적조차 사라진 고려의 성터 만월대의 쓸쓸한 감회... 일제의 탄압 아래 우리 민족의 시름을 실어 널리 불렸던 <황성옛터>는 조선총독부가 금지곡으로 정했으나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널리 퍼져 나갔다.
<남인수>
일제강점기 후기인 1941년 <황성옛터>를 다시 불러 널리 알렸으며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거라 삼팔선>, <추억의 소야곡>으로 한국전쟁 전후를 풍미한 대중가요 가수
흘러간 옛 노래 <황성옛터>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꾀꼬리의 여왕 황금심
1936년 열다섯 나이에 <왜 못 오시나요>와 <지는 석양 어이 하리오>로 데뷔한 황금심. 그 후 <알뜰한 당신>과 <한양은 천 리 원정>이 큰 히트를 하면서 그녀의 시대가 시작된다. 1960년대까지 활동하며 꾀꼬리의 여왕이라 불렸던 황금심. 그녀의 구성진 민요조 창법은 당시의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와 만나 결혼했는데 고복수가 북한군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시련의 암흑기를 이겨내고 1952년 제주도를 소재로 한 노래 <삼다도 소식>으로 다시 인기를 누렸다.
<황금심>
일제강점기 15살에 데뷔해 민요조의 구성진 창법을 구사해 <꾀꼬리의 여왕>이라 불린 가수로 광복 전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대표곡으로는 <알뜰한 당신>, <삼다도 소식> 등이 있음
꾀꼬리의 여왕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고복수의 타향살이
일제강점기 최고의 대중가요로 꼽힐 만큼 크게 유행한 <타향살이>를 부른 고복수. 그는 당시 최고의 인기 여가수 황금심과 결혼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가사의 <짝사랑>이 또다시 인기를 누리면서 신민요의 터를 닦은 가수 이은파와의 민요 듀엣곡 <풍년송> 등으로 광복을 전후해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은퇴 후 굴곡을 겪으며 불운의 가수로 남았다.
<타향살이>
가수 고복수의 대명사와 같은 곡으로 기교 없는 순수한 창법과 고향을 그리는 가사가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전후로 고국을 떠난 동포들에게 감흥을 주면서 망향가처럼 불림
고복수의 <타향살이>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1935년 <목포의 눈물>이 크게 히트하여 유명해진 가수 이난영은 그 후에도 <해조곡>, <울어라 문풍지> <목포는 항구다> 등으로 사랑받았다. 그녀는 당시 대중가요의 천재라 불린 작곡가 겸 가수 김해송과 결혼했지만 그가 납북되면서 시련을 겪었으며 자녀들을 유명 가수로 키워낸다. 후에 이난영, 김해송의 자녀들은 <김시스터즈>라는 보컬 팀으로 활동했으며 1966년에는 목포 유달산에 이난영을 기리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졌다.
<목포의 눈물>
1935년에 발표된 민요풍 가락의 구슬픈 곡조로 <남행열차> 와 함께 목포를 상징하는 노래로 통하며 매년 목포에서 <이난영 가요제>가 열릴 만큼 유명한 추억의 가수, 이난영의 대표곡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추억의 가수 진방남, 백난아
가수로 활동할 때는 진방남 작곡가로 일할 때는 반야월 그는 1938년 데뷔 이후 <불효자는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등으로 히트했다. <불효자는 웁니다>를 녹음하기 전 그는 모친상을 지내 통곡하듯 노래했으며 반야월이라는 이름으로 작곡한 노래는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 등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가수 백난아는 <금박댕기>, <낭랑 18세>로 인기를 누렸다.
<진방남(반야월)>
일제강점기 대중가요 가수이자 작곡가로 <불효자로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등을 불렀으며, 반야월이라는 작사 겸 작곡가로 활동할 당시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의 명곡을 남기며 당대 가수 이난영, 작곡가 박시춘과 함께 3대 보물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 있는 음악인
진방남(반야월)의 <마상일기>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백난아>
14세 때인 1940년 신문사 콩쿠르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며 데뷔해 <땅 버들 물 버들> <아리랑 낭랑>, <낭랑 18세>, <금박댕기>로 사랑받은 추억의 국민 가수
백난아의 <아리랑 낭랑> - 문화영화 105호 (1960년)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전후한 그 시절.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을 흘러간 옛 노래는... 암울했던 그 시절... 민족의 눈물과 희망을 함께한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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