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퍼진 한국문화···쿠바 꼬레아노 [S&News]
등록일 : 2024.02.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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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기자>
# 쿠바 수교
1980년대에 멈춰버린 것 같은 풍경 속 올드카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어딘가에서 재즈 선율이 늘 흘러나오는 이 나라.
바로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쿠바입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약 30년간 쿠바에 머물며 세계적인 문학작품을 써내려갔죠.
쿠바는 한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인데요.
그런 쿠바와 지금껏 외교 관계가 없었지만 드디어 수교했죠.
우리나라의 193번째 수교국이자 미주와 카리브해 지역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로, 1959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현재까지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20년 넘게 쿠바와의 수교에 공들인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건데요.
23년 전인 2000년에 정부가 쿠바에 처음으로 수교 제안을 한 뒤 지난해 5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쿠바의 외무부 차관을 만나 다시 수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1960년부터 북한과 수교를 맺어온 쿠바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한국과의 수교 과정이 순탄치는 않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이번 수교가 맺어지기까지 양국은 거의 모든 과정을 물밑 협상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년 1만5천 명에 가까운 우리 국민이 쿠바를 방문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영사를 통해 체계적인 우리 국민 보호는 물론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문화 교류
이렇게 한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수교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바로, 적극적인 문화교류가 있었습니다.
한국문화, 한류가 사회주의 쿠바의 문을 열어 제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인데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한국 드라마가 처음으로 쿠바 국영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를 시작으로 여러 드라마가 연이어 쿠바 국민 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자연스레 K-POP과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늘고 한국어, 한국 음식 배우기 열풍도 불었죠.
10년 전 쿠바 수도 아바나에 소규모 한국어 강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에도 입학 경쟁률이 높았고요.
지난 2022년에는 한국문화센터 한글학교가 문을 열면서 높아진 한국 문화의 인기로 인한 한국문화 향유 수요를 소화하고 하고 있는데요.
쿠바에서도 한국 문학이나 역사를 연구하는 한국학 연구자가 탄생하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쿠바 속 한인
오랜 세월 미수교국이던 쿠바에 한국문화가 알려지고 사랑받게 된 이유는 단순히 K팝과 K드라마 뿐만이 아닙니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당시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왔다가 1921년 쿠바로 옮겨 정착한 천백여 명의 1세대 쿠바 한인들의 이민 역사가 쿠바에 뿌리내려져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그동안 문화와 인적교류, 개발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 협력을 조금씩 해 온 거죠.
실제로 지난 2022년 들어선 한국문화센터는 2014년 문을 연 한인후손문화원을 확장 이전한 건데요.
이 문화원은 1세대 쿠바 한인의 후손들을 위해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하고,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이 보태져 건립된 거죠.
이후 쿠바 내에 거주하는 한인 후손들의 교류와 소통의 장이자 쿠바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기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1930년대 쿠바 정권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 속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기도 하고,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에는 일부 한인들이 재산 몰수라는 피해를 보기도, 또 다른 이들은 생활고를 덜고 차별에서 벗어나는 등 쿠바의 성쇠를 함께 겪었습니다.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지역별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보탠 쿠바 속 1세대 한인, '쿠바 꼬레아노'.
이제는 한국과 쿠바가 수교를 맺은 만큼, 쿠바 전역에 흩어진 2세대부터 6세대에 이르는 천여명의 후손들에게도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S&News였습니다.
# 쿠바 수교
1980년대에 멈춰버린 것 같은 풍경 속 올드카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어딘가에서 재즈 선율이 늘 흘러나오는 이 나라.
바로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쿠바입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약 30년간 쿠바에 머물며 세계적인 문학작품을 써내려갔죠.
쿠바는 한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인데요.
그런 쿠바와 지금껏 외교 관계가 없었지만 드디어 수교했죠.
우리나라의 193번째 수교국이자 미주와 카리브해 지역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로, 1959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현재까지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20년 넘게 쿠바와의 수교에 공들인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건데요.
23년 전인 2000년에 정부가 쿠바에 처음으로 수교 제안을 한 뒤 지난해 5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쿠바의 외무부 차관을 만나 다시 수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1960년부터 북한과 수교를 맺어온 쿠바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한국과의 수교 과정이 순탄치는 않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이번 수교가 맺어지기까지 양국은 거의 모든 과정을 물밑 협상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년 1만5천 명에 가까운 우리 국민이 쿠바를 방문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영사를 통해 체계적인 우리 국민 보호는 물론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문화 교류
이렇게 한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수교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바로, 적극적인 문화교류가 있었습니다.
한국문화, 한류가 사회주의 쿠바의 문을 열어 제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인데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한국 드라마가 처음으로 쿠바 국영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를 시작으로 여러 드라마가 연이어 쿠바 국민 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자연스레 K-POP과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늘고 한국어, 한국 음식 배우기 열풍도 불었죠.
10년 전 쿠바 수도 아바나에 소규모 한국어 강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에도 입학 경쟁률이 높았고요.
지난 2022년에는 한국문화센터 한글학교가 문을 열면서 높아진 한국 문화의 인기로 인한 한국문화 향유 수요를 소화하고 하고 있는데요.
쿠바에서도 한국 문학이나 역사를 연구하는 한국학 연구자가 탄생하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쿠바 속 한인
오랜 세월 미수교국이던 쿠바에 한국문화가 알려지고 사랑받게 된 이유는 단순히 K팝과 K드라마 뿐만이 아닙니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당시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왔다가 1921년 쿠바로 옮겨 정착한 천백여 명의 1세대 쿠바 한인들의 이민 역사가 쿠바에 뿌리내려져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그동안 문화와 인적교류, 개발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 협력을 조금씩 해 온 거죠.
실제로 지난 2022년 들어선 한국문화센터는 2014년 문을 연 한인후손문화원을 확장 이전한 건데요.
이 문화원은 1세대 쿠바 한인의 후손들을 위해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하고,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이 보태져 건립된 거죠.
이후 쿠바 내에 거주하는 한인 후손들의 교류와 소통의 장이자 쿠바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기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1930년대 쿠바 정권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 속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기도 하고,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에는 일부 한인들이 재산 몰수라는 피해를 보기도, 또 다른 이들은 생활고를 덜고 차별에서 벗어나는 등 쿠바의 성쇠를 함께 겪었습니다.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지역별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보탠 쿠바 속 1세대 한인, '쿠바 꼬레아노'.
이제는 한국과 쿠바가 수교를 맺은 만큼, 쿠바 전역에 흩어진 2세대부터 6세대에 이르는 천여명의 후손들에게도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S&News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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