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세레나데, 황성옛터(1932)
등록일 : 2024.10.0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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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프다는 이유로 금지가요가 된 곡이 있다. 1928년 발표된 <황성의 적(황성옛터)>이다. 순회악극단 소속 작곡가 전수린과 작사가 왕평이 만든 이 곡은 이애리수의 목소리로 극장에서 종종 울려퍼졌고, 극장에 임석한 일본 경찰은 이 노래 하나로 민족의식이 폭발하는 현장을 보고 공연을 중단시키기 이르렀는데... 조선의 세레나데라 불리며 사랑받은 <황성의 적>. 그 애절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풍금 <황성의 적> 노래
# 오프닝
- MC 장유정 인사
- 고정패널 김장실, 하재근, 특별출연 풍금 소개
- <황성의적(1932)>은 대중가요의 시작을 연 노래. 1968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요 설문조사에서 1위
# 1932년, 대한민국은? (기사원문 활용)
- 1.08 이봉창의사 의거 / 03.01 만주국 건국 / 04.11 충남 아산에서 천연두로 100여 명 사망 / 04.20 조선어학잡지 <한글> 창간 / 04.29 윤봉길의사 의거 / 07월 대구, 일사병으로 사망자 속출
# 당시 만주국을 풍요의 땅이자 유토피아로 홍보한 일제
- 진방남의 <꽃마차(1939)>, 원래 가사는 '하루삔(하얼빈)'이었으나 나중에 '꽃서울'로 바뀜
# 1932년, 조선의 가요사 흐름은?
- 조선 유행가를 만들고자 했던 일본 레코드 회사. 하지만 흥행에 실패. 돈이 안되니 조선 유행가는 안 내겠다고 함. 이때 문예부장 이기세가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 이애리수 발견. <황성의 적>이 대박이 남. 음반판매량 5만장에 달한다는 소문
# 이애리수 <황성의 적>
- 당시 2박자를 사용하는 일본 노래와 달리 우리 고유의 3박자 사용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했음. 음반 흥행 덕분에 조선 유행가 가능성 생김. 이후 조선인 작사가, 작곡가의 대거 등장
# 이애리수의 인기를 증명하는 당시 신문기사
#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
# 이애리수는 누구인가
- 서양이름 앨리스를 차명한 이름. 본명은 이음전. 아홉 살부터 극단 생활
-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막간 가수로 활동. 황성의 적으로 인기
# 당시 많이 불렸던 노래 황성의 적
- 윤백단 '황성의 적', 이경설 '고성의 밤', 임생원 '회상', '야명조', 신카나리아 '웅대한 이상'
- 신카나리아 <웅대한 이상>
# 황성의 적, 어떻게 씌였나
- 전수린 작곡, 왕 평 작사. 황해도 개성의 만월대에서 폐허가 되어 달빛에 물든 모습을 보고 영감. 망국의 쓸쓸한 풍경에 공감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 극장에 임석한 일본 경찰,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공연 중단시키고. 전수린과 왕평 불러다가 ‘무슨 의도로 만들었냐’며 취조하기까지
# 왕평은 누구인가
- 본명 이두희. 불과 32세에 연극 공연 중 뇌출혈로 요절
- 직접 영화 시나리오 쓰고 출연까지 했던 만능 에술인. 왕평의 노래 중에는 <항구의 일야>, <조선팔경가>, <고도의 정한>등이 있음. 이중에서 <항구의 일야>는 라디오 드라마의 효시가 됨
# 이애리수의 사랑 이야기
- 연희전문 졸업반 학생 배동필과 사랑에 빠짐. 하지만 배동필에겐 아내가 있었음
- 자살 시도 후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 당시 신문기사에도 내용이 상세히 실림
- 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양가 부모님께 허락받고 결혼한 두 사람. 시댁은 평생 가수였다는 말을 함구하도록 요구. 아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음
# 이애리수 <버리지 말아요(1932)>
# 풍금 <황성의 적> 노래
# 오프닝
- MC 장유정 인사
- 고정패널 김장실, 하재근, 특별출연 풍금 소개
- <황성의적(1932)>은 대중가요의 시작을 연 노래. 1968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요 설문조사에서 1위
# 1932년, 대한민국은? (기사원문 활용)
- 1.08 이봉창의사 의거 / 03.01 만주국 건국 / 04.11 충남 아산에서 천연두로 100여 명 사망 / 04.20 조선어학잡지 <한글> 창간 / 04.29 윤봉길의사 의거 / 07월 대구, 일사병으로 사망자 속출
# 당시 만주국을 풍요의 땅이자 유토피아로 홍보한 일제
- 진방남의 <꽃마차(1939)>, 원래 가사는 '하루삔(하얼빈)'이었으나 나중에 '꽃서울'로 바뀜
# 1932년, 조선의 가요사 흐름은?
- 조선 유행가를 만들고자 했던 일본 레코드 회사. 하지만 흥행에 실패. 돈이 안되니 조선 유행가는 안 내겠다고 함. 이때 문예부장 이기세가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 이애리수 발견. <황성의 적>이 대박이 남. 음반판매량 5만장에 달한다는 소문
# 이애리수 <황성의 적>
- 당시 2박자를 사용하는 일본 노래와 달리 우리 고유의 3박자 사용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했음. 음반 흥행 덕분에 조선 유행가 가능성 생김. 이후 조선인 작사가, 작곡가의 대거 등장
# 이애리수의 인기를 증명하는 당시 신문기사
#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
# 이애리수는 누구인가
- 서양이름 앨리스를 차명한 이름. 본명은 이음전. 아홉 살부터 극단 생활
-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막간 가수로 활동. 황성의 적으로 인기
# 당시 많이 불렸던 노래 황성의 적
- 윤백단 '황성의 적', 이경설 '고성의 밤', 임생원 '회상', '야명조', 신카나리아 '웅대한 이상'
- 신카나리아 <웅대한 이상>
# 황성의 적, 어떻게 씌였나
- 전수린 작곡, 왕 평 작사. 황해도 개성의 만월대에서 폐허가 되어 달빛에 물든 모습을 보고 영감. 망국의 쓸쓸한 풍경에 공감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 극장에 임석한 일본 경찰,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공연 중단시키고. 전수린과 왕평 불러다가 ‘무슨 의도로 만들었냐’며 취조하기까지
# 왕평은 누구인가
- 본명 이두희. 불과 32세에 연극 공연 중 뇌출혈로 요절
- 직접 영화 시나리오 쓰고 출연까지 했던 만능 에술인. 왕평의 노래 중에는 <항구의 일야>, <조선팔경가>, <고도의 정한>등이 있음. 이중에서 <항구의 일야>는 라디오 드라마의 효시가 됨
# 이애리수의 사랑 이야기
- 연희전문 졸업반 학생 배동필과 사랑에 빠짐. 하지만 배동필에겐 아내가 있었음
- 자살 시도 후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 당시 신문기사에도 내용이 상세히 실림
- 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양가 부모님께 허락받고 결혼한 두 사람. 시댁은 평생 가수였다는 말을 함구하도록 요구. 아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음
# 이애리수 <버리지 말아요(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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