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을 걸어가는 '군산'
등록일 : 2025.03.1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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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타임머신이 아니라 자동차, 버스, 기차를 타고 도착해도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도시. 이번 여행의 백미는 멈추어 버린 시간 속을 유영하는 것이다. 100여 년 된 건물들, 해방 이후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과 마을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들. 그 덕분으로 수많은 영화가 군산의 거리에서 탄생했다. <장군의 아들>, <타짜>, <8월의 크리스마스>, <남자가 사랑할 때>, <변호사> 그 속에는 도시의 뜨거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어느덧 우리는 시원하게 뚫린 새만금방조제를 달린다. 서해의 물결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고군산군도에서 우리는 그리움을 만난다.
■ 군산
- 군산 땅의 옛 이름은 진포이다. 진포는 금강 하구를 중심지로 삼고 성장했다.
- 진포와 달리 애초에 군산이라고 불리던 곳은 바다 위에 있었다. 선유도, 무녀도, 야미도, 신시도, 장자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수십 개의 무인도가 산처럼 무리 지어 자리한 곳을 군산이라고 했다.
- 고군산군도와 고군산대교. 푸른 바다 위 여러 개의 섬이 산처럼 솟아있다. 돛 모양을 형상화한 다리는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로 2016년에 완공됐다. 군산은 수십 개의 섬이 산처럼 솟았다고 붙은 이름이었다. 육지에 이름을 내어준 지금은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군도로 불린다.
- 군산은 전 인구가 500여 명에 머물렀던 조그만 포구였다. 서쪽으로는 망망한 바다를 마주하고, 남쪽과 동쪽은 호남평야가 이어지는 풍요로운 땅이었다. 일제는 기름진 땅과 포구를 수탈의 거점으로 생각했다. 개항 후 군산은 물밀듯이 들어온 일본인들은 교활한 수법으로 땅과 곡식을 수탈하여 부를 쌓았다. 그 흔적이 아픈 상처처럼 군산 곳곳에 남아 있다.
- 1930년대 군산의 겉모습은 화려했다. 동서양이 혼합된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축물이 도시의 국적을 완전히 바꿔 놓은 듯하다.
* 군산 원도심, 탁류길
- 일제강점기 때 가장 번화했던 거리다. 장미동 일대이다. 예쁜 꽃 이름 장미가 아니라 쌀을 저장해 두었던 곳이라는 의미의 장미다. 개항기 이 일대에는 쌀의 시세를 예측하여 곡물을 현물 또는 선물로 거래하는 장이 있었다. 미두장은 요즘으로 치면 증권시장과 비슷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장미동 근방에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군산세관과 일본19은행 군산지점, 탁류의 고태수가 다니는 은행으로 묘사된 조선은행 등 수탈의 구심점이었던 금융기관들이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방문객을 맞는다. 이름하여 탁류길이다. 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 1930년대를 관통하며 흘러갔던 군산의 시간이 희미하게 재연된다.
-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 일제강점기 지방 소도시 하층민의 몰락 과정을 풍자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
■ 경암동 철길 마을 [경암동]
- 교복 대여, 달고나 만들기, 운세 뽑기 세팅
- 기찻길 옆 오막살이. 동요 속에 나올 법한 철길 마을이 군산 경암동에 있다.
- 경암동 철길 마을은 1944년 군산시 경암동에 준공하여 페이퍼 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는 총 2.5km 철로 주변의 마을을 총괄하여 붙인 이름이다.
- 명칭의 유래는 마을이 위치한 행정 구역 명칭에 따라 철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경암동 철길 마을이라고 불렀다.
- 집들 사이로 운행하던 기차는 2008년 6월부터 멈추었지만 지금도 집들 사이로 철길이 뻗어 있다.
- 1970년대에는 50~60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15~16가구만 남아 있다.
- 분식집으로 문패를 바꿔 달고 손님을 맞는 집도 있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엔 카페와 갤러리,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섰다.
- 1944년 개설된 철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며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현재는 근대 추억을 자극하는 다양한 즐길 거리가 가득한 명소로 유명하다.
-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지. 이 영화의 90%를 군산에서 촬영했는데, 황정민과 한혜진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철길을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경암동에 자리한 철길 마을이다.
■ 구영길, 초원사진관과 적산가옥 식당 한일옥 [신창동]
-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세트장이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정원과 주차단속원 다림의 풋풋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졌던 공간이다. 영화는 전편에 걸쳐 사진관이 있는 소도시 군산의 일상을 보여준다.
- 구영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만나는 사진관은 어릴 적 동네에 흔하게 있던 사진관을 기억하게 해준다. 원래 창고 건물이었던 것을 영화 세트장으로 꾸며서 사용했는데 실제 사진관인 줄 알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관 실내에는 영화 촬영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관 앞에는 정원이 타고 다니던 스쿠터와 다림이 주차 단속할 때 이용하던 국민차 티코가 두 사람의 아련한 사랑을 추억하게 해준다.
- 1937년 김외과 병원으로 지어진 일본식 가옥. 곳곳에 78년 전 흔적과 골동품을 전시해두었다.
- 건물 2층에는 조촐한 민속 박물관이 차려져 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우리네 민속 유산과 자료를 제법 다양하게 전시해 놓았다.
- 나물국, 시래기국, 육회비빔밥 등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소고기무국이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무, 쇠고기, 대파 등으로 맛을 낸 소고기무국은 깔끔하고 담백하다. 국물 맛이 여행에 시달린 속까지 시원하게 달래준다. 길가에 허름한 가게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알려진 초원사진관 맞은편에 새로 식당을 지어 이전했다. 새벽 3시부터 영업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항상 대기 중이다.
■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식 사찰, 동국사
-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일본식 사찰이다. 1909년 일본 조동종 승려 내전불관이 창건했다. 원래 이름은 금강선사였으나 해방 후 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개명했다. 금광동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낯선 일본식 사찰이 나타난다.
- 우리나라 사찰과 달리 일주문이 없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대웅전. 우리네 사찰은 석축 기단 위에 법당을 세웠으나 동국사엔 높은 기단이 없다.
- 단청도 없이 깎아지른 급경사 지붕과 곧게 뻗은 용마루가 일제의 건축양식을 느끼게 한다.
- 어둑한 복도를 지나 법당으로 들어서면 의외의 광경이 펼쳐진다. 부처님 맞은편 공간에 우리 불교를 말살하려 한 다양한 증거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 절 마당으로 나오면 일본식 범종각 앞에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을 새긴 돌이 서 있다. 황민화에 앞장섰던 불교 종단의 사죄 글이다.
■ 환상적인 드라이브 더 환상적인 일몰,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로~
- 사업의 효과성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군산 여행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 시원하게 뚫린 방조제 길을 달리면 푸른 서해 위에 고군산 열도가 한가로이 떠 있다.
- 차 창밖으로 펼쳐진 고군산 풍광은 해양도시 군산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이다.
- 새만금 이전의 가장 긴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였다. 새만금방조제는 이보다 1.4km 더 긴 33.9km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1991년에 시작하여 2010년에 공사를 마쳤다. 20년 남짓 걸린 대역사였다. 방조제 위에는 4차선 도로를 놓았다.
- 방조제가 완성되면서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던 물길은 육지가 되었고 배를 타고 가야 했던 고군산군도의 섬들은 이제 자동차로 닿을 수 있게 되었다.
■ 신선처럼 노니는 섬, 선유도와 망주봉 [동국사에서 40분 소요]
- 선유도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일몰, 다도해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은 군산 도심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감동을 준다.
- 선유도는 6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의 중심이다. 선유도의 옛 이름은 군산도였다. 그러나 진포가 군산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제 이름을 빼앗긴 섬은 고군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옛 군산도라는 뜻이다.
- 군산에서 배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려야 도착한 섬. 새만금 사업이 진행되면서 가까운 곳이 됐다.
- 망주봉 뒤쪽에 자리한 <선유도에 물들다>라는 까페가 있다.
- 까페의 운영자 임동준 씨는 선유도의 역사에 해박하고 선유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선유도 토박이다. 일가가 이곳에 정착한 지 300년 이상 되었을 것이다.
- 그의 할아버지는 망주봉 뒤의 새터 마을에서 1970년대 초 집을 지어 사셨고 임동준 씨가 2018년에 이곳,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 선유도의 망주봉
-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3호로 1918년 6월 4일 지정되었다.
- 망주봉은 옛날 억울하게 유배된 한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유래가 유명하며, 하늘과 바다가 모두 붉은 색조로 변하는 ‘선유낙조’를 볼 수 있는 탁월한 장소이기도 하다.
- 망주봉에서 바라본 선유낙조는 서해의 낙조기관 중 으뜸이며, 360도 사방의 조망지점을 갖고 있어 여타의 명소와는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 군산
- 군산 땅의 옛 이름은 진포이다. 진포는 금강 하구를 중심지로 삼고 성장했다.
- 진포와 달리 애초에 군산이라고 불리던 곳은 바다 위에 있었다. 선유도, 무녀도, 야미도, 신시도, 장자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수십 개의 무인도가 산처럼 무리 지어 자리한 곳을 군산이라고 했다.
- 고군산군도와 고군산대교. 푸른 바다 위 여러 개의 섬이 산처럼 솟아있다. 돛 모양을 형상화한 다리는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로 2016년에 완공됐다. 군산은 수십 개의 섬이 산처럼 솟았다고 붙은 이름이었다. 육지에 이름을 내어준 지금은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군도로 불린다.
- 군산은 전 인구가 500여 명에 머물렀던 조그만 포구였다. 서쪽으로는 망망한 바다를 마주하고, 남쪽과 동쪽은 호남평야가 이어지는 풍요로운 땅이었다. 일제는 기름진 땅과 포구를 수탈의 거점으로 생각했다. 개항 후 군산은 물밀듯이 들어온 일본인들은 교활한 수법으로 땅과 곡식을 수탈하여 부를 쌓았다. 그 흔적이 아픈 상처처럼 군산 곳곳에 남아 있다.
- 1930년대 군산의 겉모습은 화려했다. 동서양이 혼합된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축물이 도시의 국적을 완전히 바꿔 놓은 듯하다.
* 군산 원도심, 탁류길
- 일제강점기 때 가장 번화했던 거리다. 장미동 일대이다. 예쁜 꽃 이름 장미가 아니라 쌀을 저장해 두었던 곳이라는 의미의 장미다. 개항기 이 일대에는 쌀의 시세를 예측하여 곡물을 현물 또는 선물로 거래하는 장이 있었다. 미두장은 요즘으로 치면 증권시장과 비슷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장미동 근방에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군산세관과 일본19은행 군산지점, 탁류의 고태수가 다니는 은행으로 묘사된 조선은행 등 수탈의 구심점이었던 금융기관들이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방문객을 맞는다. 이름하여 탁류길이다. 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 1930년대를 관통하며 흘러갔던 군산의 시간이 희미하게 재연된다.
-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 일제강점기 지방 소도시 하층민의 몰락 과정을 풍자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
■ 경암동 철길 마을 [경암동]
- 교복 대여, 달고나 만들기, 운세 뽑기 세팅
- 기찻길 옆 오막살이. 동요 속에 나올 법한 철길 마을이 군산 경암동에 있다.
- 경암동 철길 마을은 1944년 군산시 경암동에 준공하여 페이퍼 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는 총 2.5km 철로 주변의 마을을 총괄하여 붙인 이름이다.
- 명칭의 유래는 마을이 위치한 행정 구역 명칭에 따라 철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경암동 철길 마을이라고 불렀다.
- 집들 사이로 운행하던 기차는 2008년 6월부터 멈추었지만 지금도 집들 사이로 철길이 뻗어 있다.
- 1970년대에는 50~60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15~16가구만 남아 있다.
- 분식집으로 문패를 바꿔 달고 손님을 맞는 집도 있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엔 카페와 갤러리,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섰다.
- 1944년 개설된 철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며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현재는 근대 추억을 자극하는 다양한 즐길 거리가 가득한 명소로 유명하다.
-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지. 이 영화의 90%를 군산에서 촬영했는데, 황정민과 한혜진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철길을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경암동에 자리한 철길 마을이다.
■ 구영길, 초원사진관과 적산가옥 식당 한일옥 [신창동]
-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세트장이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정원과 주차단속원 다림의 풋풋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졌던 공간이다. 영화는 전편에 걸쳐 사진관이 있는 소도시 군산의 일상을 보여준다.
- 구영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만나는 사진관은 어릴 적 동네에 흔하게 있던 사진관을 기억하게 해준다. 원래 창고 건물이었던 것을 영화 세트장으로 꾸며서 사용했는데 실제 사진관인 줄 알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관 실내에는 영화 촬영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관 앞에는 정원이 타고 다니던 스쿠터와 다림이 주차 단속할 때 이용하던 국민차 티코가 두 사람의 아련한 사랑을 추억하게 해준다.
- 1937년 김외과 병원으로 지어진 일본식 가옥. 곳곳에 78년 전 흔적과 골동품을 전시해두었다.
- 건물 2층에는 조촐한 민속 박물관이 차려져 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우리네 민속 유산과 자료를 제법 다양하게 전시해 놓았다.
- 나물국, 시래기국, 육회비빔밥 등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소고기무국이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무, 쇠고기, 대파 등으로 맛을 낸 소고기무국은 깔끔하고 담백하다. 국물 맛이 여행에 시달린 속까지 시원하게 달래준다. 길가에 허름한 가게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알려진 초원사진관 맞은편에 새로 식당을 지어 이전했다. 새벽 3시부터 영업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항상 대기 중이다.
■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식 사찰, 동국사
-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일본식 사찰이다. 1909년 일본 조동종 승려 내전불관이 창건했다. 원래 이름은 금강선사였으나 해방 후 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개명했다. 금광동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낯선 일본식 사찰이 나타난다.
- 우리나라 사찰과 달리 일주문이 없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대웅전. 우리네 사찰은 석축 기단 위에 법당을 세웠으나 동국사엔 높은 기단이 없다.
- 단청도 없이 깎아지른 급경사 지붕과 곧게 뻗은 용마루가 일제의 건축양식을 느끼게 한다.
- 어둑한 복도를 지나 법당으로 들어서면 의외의 광경이 펼쳐진다. 부처님 맞은편 공간에 우리 불교를 말살하려 한 다양한 증거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 절 마당으로 나오면 일본식 범종각 앞에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을 새긴 돌이 서 있다. 황민화에 앞장섰던 불교 종단의 사죄 글이다.
■ 환상적인 드라이브 더 환상적인 일몰,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로~
- 사업의 효과성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군산 여행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 시원하게 뚫린 방조제 길을 달리면 푸른 서해 위에 고군산 열도가 한가로이 떠 있다.
- 차 창밖으로 펼쳐진 고군산 풍광은 해양도시 군산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이다.
- 새만금 이전의 가장 긴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였다. 새만금방조제는 이보다 1.4km 더 긴 33.9km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1991년에 시작하여 2010년에 공사를 마쳤다. 20년 남짓 걸린 대역사였다. 방조제 위에는 4차선 도로를 놓았다.
- 방조제가 완성되면서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던 물길은 육지가 되었고 배를 타고 가야 했던 고군산군도의 섬들은 이제 자동차로 닿을 수 있게 되었다.
■ 신선처럼 노니는 섬, 선유도와 망주봉 [동국사에서 40분 소요]
- 선유도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일몰, 다도해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은 군산 도심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감동을 준다.
- 선유도는 6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의 중심이다. 선유도의 옛 이름은 군산도였다. 그러나 진포가 군산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제 이름을 빼앗긴 섬은 고군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옛 군산도라는 뜻이다.
- 군산에서 배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려야 도착한 섬. 새만금 사업이 진행되면서 가까운 곳이 됐다.
- 망주봉 뒤쪽에 자리한 <선유도에 물들다>라는 까페가 있다.
- 까페의 운영자 임동준 씨는 선유도의 역사에 해박하고 선유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선유도 토박이다. 일가가 이곳에 정착한 지 300년 이상 되었을 것이다.
- 그의 할아버지는 망주봉 뒤의 새터 마을에서 1970년대 초 집을 지어 사셨고 임동준 씨가 2018년에 이곳,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 선유도의 망주봉
-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3호로 1918년 6월 4일 지정되었다.
- 망주봉은 옛날 억울하게 유배된 한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유래가 유명하며, 하늘과 바다가 모두 붉은 색조로 변하는 ‘선유낙조’를 볼 수 있는 탁월한 장소이기도 하다.
- 망주봉에서 바라본 선유낙조는 서해의 낙조기관 중 으뜸이며, 360도 사방의 조망지점을 갖고 있어 여타의 명소와는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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