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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의 역사-民意는 직선제 개헌
등록일 : 200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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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마지막 순서로 8-9차 개헌이 있었던 5-6공 당시를 되돌아봅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원 포인트 개헌안이 갖는 역사적 의미도 살펴봅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소장 등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권장악을 위한 수순을 밟아간다.

전두환 소장은 자신이 추종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다.

우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언론통폐합과 공직자 숙청 등의 조치를 취한다.

또한 군부독재에 반대해 궐기한 광주시민들을 총칼과 몽둥이로 처참하게 짓밟는다.

신 군부 세력은 정권탈취의 마지막 수순으로 개헌작업에 들어간다.

개헌작업은 5.16쿠데타 당시와 마찬가지로 계엄이 선포돼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언론의 자유가 봉쇄된 가운데 진행된다.

권력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로 하되 임기는 7년 단임으로 했다.

하지만 유신헌법이 그랬던 것처럼 직선이 아닌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을 유지한다.

또 다시 군부에 의해 헌정이 유린된 순간이었다.

1985년 2월 총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카드를 들고 나온 신민당이 일대 돌풍을 일으킨다.

이에 고무된 야당은 직선제의 연내 개헌을 위한 서명 운동에 들어간다.

다급해진 집권세력은 신민당사 봉쇄와 서명부 압수 등으로 개헌 추진 노력을 탄압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4.13 호헌조치를 통해 개헌 합의의 실패 책임을 양김에게 돌리는 한편 개헌 논의를 88올림픽 이후로 미루고 13대 대통령은 5공화국 헌법에 따라 선출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직선제 개헌을 향한 민심은 거대한 항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열망은 결국 6월 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몸부림으로 나타나게 되고, 집권 민정당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여야는 합의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헌법개정안을 마련하고 10월27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한다.

그리고 이 헌법에 따라 87년부터 모두 4차례 대통령 직접선거가 치러졌다.

개헌사상 가장 긴 수명을 유지하며 20년간 우리 헌정의 기틀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제안은 국가발전에 걸맞게 정치문화도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는 절박함을 담고 있다.

정치에 발목이 잡혀 국가발전이 지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독재와 장기집권을 넘어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 책임정치라는 내용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요원한 숙제로 남아있다.

9차 개헌이 이뤄진지 20년을 맞는 지금, 원 포인트 개헌은 지나온 20년을 갈무리하고 도래할 20년 국가발전의 기틀을 짜는 역사다.



(한국정책방송 KTV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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