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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개방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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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화 앵커>
몽골군부터 청군, 일본군, 그리고 최근에는 미군까지, 외국군의 주둔 등 오욕으로 얼룩졌던 용산 공원 부지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유롭게 개방됩니다.

정부는 오늘 첫 개방 행사를 했는데요,
용산 동남쪽에 있는 미군 장교숙소 5단지 부지가 오는 8월 1일부터 전면 개방됩니다.

용산 공원 부지는 최근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했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자 서울 속에 있으면서도, 고립된 저들의 외래 공간이었습니다.

한국의 영토이면서 주권이 미치지 않는 경계의 땅이었습니다.

또한, 서울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서울 교통의 흐름을 막아버리고, 서울 지역의 토지 연속성을 차단하는 금단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용산 미군기지는 1945년 9월 한국에 진주한 미 24단이 일본군 기지를 접수하면서부터 출발합니다.

1953년에는 미 8군 사령부가, 1978년에는 한미연합군 사령부가 용산 미군기지 내에 건설되었습니다.

용산 미군기지 반환은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부터 시작되어, 1989년 서울시가 용산 미군기지의 민족 공원화 계획이 발표되고 1990년 6월 용산미군기지 이전 합의서가 체결되면서 추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용산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기를, 그 산의 모양이 용의 형태와 같다고 하여 용산으로 이름 지어졌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에 용산은 서울의 관문이었죠.

조선 팔도의 정박지로서 쌀을 중심으로 한 경강 상인들의 물류 집화장이자,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용산 강 일대는 울창한 삼림이 우거지고 녹사평 일대에는 갈대밭이 발달하여 도시 귀족들의 유람지이자, 문인들의 풍류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용산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별 영창 등 병영 거점으로도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외국군이 침략했을 때는 용산에 주둔군을 두어 장악했죠.

13세기 몽골군의 병참 기지로, 임진왜란 때는 일본 고니시 부대, 또 임오군란 시기에도 청군의 주둔지였습니다.

그러나 용산이 그 오욕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일본군이 침략하면서 부터입니다
1896년 왜군 수비대 주둔, 1903년 왜군 주차대 사령부 설치, 1909년 왜군 주차군 사령부 병영시설 완공, 이후 왜군 20사단 등 1945년에는 60만의 왜군 주둔 등 일제는 용산을 군사 도시화 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까지 마련했죠.

정부는 미군이 이전한 공원 부지 개발 계획을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용산 공원 추진 위원회와 국민 참여단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용산 공원이 외국군의 금단 땅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향후 개발되는 용산 공원이 서울시민의 품으로, 국민의 품으로 완전히 귀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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